[가치혁신 시대를 열자] 제2부 : (4) '감성·기능, 초점을 바꿔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5일 화장품 전문점 '미샤' 명동 매장.
전날 내린 폭설 탓에 명동을 찾는 쇼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유독 이 가게만은 손님들로 북적댔다.
매장 안의 고객들은 다양했다.
교복 차림의 애띤 여고생부터 50대 후반의 아주머니까지 연령 불문.
남성용 화장품을 고르는 젊은 커플도 보이고 테스트용 립스틱을 발라보는 벽안의 미국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단체관광을 온 일본인 여성 일행은 연신 "에~ 야쓰이(우와 싸다)"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것이 매장에 진열된 모든 화장품의 가격대는 3천3백~9천8백원.
외국 유명 브랜드에서는 10만원을 호가하는 주름방지 크림이 9천8백원 밖에 안된다.
일본 관광객들 입에서 '믿을 수 없는 가격'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게다가 매장이 깨끗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어 그 정도 가격이라면 으례 제품들이 아무렇게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땡처리' 매장 정도로만 생각했던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송하영 미샤 명동점장은 "싼 가격에 의아해하며 한번 들렀다가 품질과 매장 분위기가 맘에 들어 단골이 된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에 '미샤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해외 유명브랜드들이 토종 브랜드를 잠식해가고 있는 마당에 미샤는 초저가 제품을 무기로 화장품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견실했던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불황에 휘청거리며 매출감소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샤의 성공은 화장품에 대한 선입견을 과감히 벗어던져버린 데서 출발했다.
감성에 호소하는 대표적인 제품으로 인식됐던 화장품을 가까이 두고 자주 써야 하는 기능성 제품으로 다시 봤다.
미샤를 탄생시킨 에이블C&C 서영필 사장은 "남들이 화장품을 패션 품목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생활 필수품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미샤는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에서 새 시장을 찾는 방법 중 하나로 제안한 '감성과 기능의 중점 바꾸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감성에 호소하는 제품으로 인식돼 이미지 만들기가 최대 과제인 아이템에서 감성 요인 대신 기능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든지,반대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술이나 성능 개선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품목에서 감성적인 측면을 더해주는 것을 말한다.
미샤가 무턱대고 초저가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
철저한 소비자 분석과 시장 조사를 통해 '비싸야 잘 팔린다'는 화장품 업계의 통념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에이블C&C는 지난 96년 화장품 브랜드 '잎스'를 운영하면서 축적된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모니터 경험을 살려 99년 인터넷 화장품 포털 뷰티넷(www.beautynet.co.kr)을 만들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에이블C&C는 회원들에게 3천3백원의 택배비만 내면 '미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이나 배달해줬다.
대신 회원들을 모니터 요원으로 적극 활용해 시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여과없이 들을 수 있었다.
다국적 생활용품업체 피죤에서 화장품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화장품 유통구조를 훤히 알고 있던 서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사실 화장품 원가가 워낙 싸기 때문에 택배비 정도만 받아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며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은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신속하고 정확히 아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네티즌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의외였다.
예상과 달리 소비자들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싼 화장품이라도 품질만 좋으면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얘기였다.
오프라인에서도 초저가 상품이 먹힐 수 있다는 믿음이 섰다.
에이블C&C는 2002년 3월 이대앞에 7평짜리 '미샤' 테스트 매장을 처음 열었다.
전략캔버스에서 나타나듯 가격을 낮추기 위해 화장품 매출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용기 및 포장비를 4분의1 수준으로 확 줄였다.
레티놀 등 특수제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용기를 플라스틱 소재로 바꿨다.
종이상자 포장도 아예 없앴다.
매장은 젊은 여성들이 부담없이 와서 모든 제품을 써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깔끔하게 꾸몄다.
개업 첫날 불과 5만원에 불과했던 이대 매장의 매출은 6개월 만에 하루 평균 3백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입소문을 통해 미샤를 알게 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성 고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님이 넘쳐 이대점은 결국 매장을 25평으로 확장해야 했다.
에이블C&C는 이대 테스트 매장의 성공을 기반으로 지난해 3월 명동 매장을 오픈,본격적인 온·오프라인 통합 마케팅에 착수했다.
'미샤'는 대리점과 소매점을 거치던 기존의 복잡했던 화장품 유통구조에서 탈피했다.
직영점이나 가맹점 형식을 도입해 중간 마진을 대폭 줄였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가격 부담이 적어졌다.
현재 전국에 있는 '미샤' 매장수는 70여개.
지??7월부터 매장을 늘리기 시작한 지 불과 6개월만의 일이다.
얼마전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서 사장은 '미샤 돌풍'에 대해 "비싼 것만이 잘 팔린다는 제조업체들의 고정관념을 깨준 것은 바로 소비자들이었다"며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품질과 가격으로 승부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