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3개 그룹별 처리"로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소액 채무자는 은행 창구에서 발생 단계부터 처리하고 다중채무자와 장기 연체자는 묶어서 한꺼번에 대처하며,나머지는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회생 가능한 신용불량자를 소액채무자,다중채무자,상환능력자 등 3개 그룹으로 구분해 상응하는 대응책을 내놓겠다는 얘기다. 재경부 관계자는 도저히 상환이 불가능한 사람은 파산제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덧붙였다. 이 같은 계획은 오는 11일 발표될 예정이다. ◆다중 신용불량자 대책 이 부총리는 "배드뱅크(bad bank) 설립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이를 통해 2백70만명에 이르는 다중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드 뱅크는 은행들의 부실 채권을 모아 처리하는 곳으로 은행들이 갖고 있는 다중 신용불량자의 채권을 한 곳에 모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채무가 여러 회사로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는 한 은행에 갚아도 다른 금융회사에 진 빚을 해결하지 못하면 신용불량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카드'인 셈이다. 이 부총리는 배드뱅크 설립 방안으로 특수목적 회사(SPC)를 제시했다. 그는 "SPC를 만들어 모든 채권자들이 워크아웃 때처럼 다 참여토록 해야 한다"며 "필요한 재원은 현물출자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신용불량자들의 채권을 SPC에 현물로 출자하고,빚이 회수되는 대로 지분대로 나눠 갖는 방식을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당초 배드 뱅크 설립 자금을 정부가 대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 연체자는 은행에서 구제 이 부총리는 소액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 "5백만원 이하 소액 신용불량자가 전체 신용불량자의 4분의 1"이라며 "(이 금액은) 은행 입장에서 대손충당이 끝난 상황이어서 5∼8년에 걸쳐 여유있게 받아도 되는만큼 은행 창구에서 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액 신용불량자들에게는 은행이 최대한 채무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신용불량 상태에서 구제해 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총리는 또 "은행들도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신용불량자에 대비해 맞춤형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취업알선과 이들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은행들이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심히 갚으면 인센티브 이 부총리는 "정부는 신용불량자 대책을 통째로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창구에서 할 것부터 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 등을 차례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서는 "원리금을 떼어 먹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열심히 갚아 나가면 가속적으로 인센티브가 제공되며 (금융회사들이) 8년까지 끌고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원리금에 대한 재조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같은 '이헌재 구상'에 대해 "아직 다중 신용불량자를 처리해야 할 SPC를 누가 주도할 것인지 불분명하고,기존 신용회복지원회와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정해진 것 같지 않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는 또 SPC를 만들어도 채무자들에게 줄 수 있는 메리트는 '원리금 감면'밖에 없어 또다른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수진·김용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