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은 흔한 창업아이템이다. 타 업종에 비해 마진이 높고 '평균적 입맛'을 공략하면 된다는 생각에 쉽게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먹는 장사로 성공할 확률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주요 상권마다 음식점들이 빽빽이 들어섰으니 경쟁이 치열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음식점간 경쟁의 핵심은 결국 '차별화'. 맛 서비스 아이템 가격 등 뭔가 특별한 것을 내놓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서울 대치동에서 '토크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장정은씨(30). 외국계 은행원에서 요리사로 깜짝 변신한 그는 '평균적 입맛' 이상을 공략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다. 서울 신사동에서 '뉴욕5000'이란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기춘씨(55). 30년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한 그는 테이블 1개짜리 초미니 레스토랑을 차별화의 무기로 삼았다. ............................................................................. 한기춘씨는 지난 2002년 오랜 타국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1972년 홍익대 무역과를 졸업하고 부모를 따라 캐나다 이민길에 오른 지 30년 만이다. 캐나다에서의 초기 생활은 항상 버거웠다. 번듯한 직장을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그에게 장사만이 대안이었다. 조그만 편의점에서 출발해 온갖 장사에 손을 댔다. 30대 후반에는 독한 마음을 먹고 '노스웨스턴 쿠진'이란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학교를 마쳤지만 막상 양식당을 차리려고 했을 땐 동양인이란 게 문제가 됐다. 양식당엔 '파란눈'의 요리사만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정서 때문. 마침내 밴쿠버 한 외곽지역에서 평판이 자자한 토박이 요리사와 동업형식으로 레스토랑을 개점했다. 동업은 2년 만에 깨졌다. 2002년 5월 귀국해서는 한국에서 정통 양식당을 운영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곧바로 2년 영주권을 신청했다. 타국 생활에 익숙해진 그에게 창업은 큰 모험이었다. 강남지역 대부분 점포의 권리금이 수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창업의욕이 움츠러들었다. 고민 끝에 최소비용을 들여 조그만 점포를 우선 시범운영키로 결론을 내렸다. 2002년 8월 말께 서울 신사동 후미진 골목에 있는 4평 점포를 임대해 '뉴욕5000'이란 점포를 차렸다. 권리금과 임대보증금,인테리어 집기비용을 합쳐 총 창업비는 2천5백만원. 주방을 꾸미고 난 공간에는 좌석 4개인 테이블 1개를 간신히 배치할 수 있었다. 창업경험도 쌓고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초미니 점포는 '차별화'전략으로 먹혀들었다. 그는 단골 위주로만 운영되는 캐나다의 초소형 레스토랑들을 벤치마킹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을 표방했다. 고객이 원하는 메뉴는 무엇이든 서비스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이블 1개뿐인 식당의 한계는 금방 드러났다. 종업원 없이 혼자서 고객의 주문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채산성도 맞지 않았다. 고객이 주문할 메뉴 예측이 불가능해 재료 준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고 샌드위치와 수프 등 값싼 메뉴로 한정할 경우 매출이 뻔했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메뉴를 차별화했다. 점심은 샌드위치 등 스낵을 주로 팔고 저녁에는 스테이크 생선 등 정통 코스요리를 선보였다. 코스요리는 1인당 4만원 정도. 초미니점포의 매출 한계를 극복하고 고급요리를 찾는 고객요구에 부합한 결과였다. 한씨의 식당운영 노하우는 고객의 방문시간을 관리하는 것.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되 고정고객들은 안부전화를 가장해 방문일정을 체크하는 게 그가 체득한 요령이다. 매출은 월 평균 8백만원 수준. 그는 단골이 점차 늘고 있어 월 매출이 최대 1천만원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신선한 재료에다 독특한 소스를 사용하는 그의 요리는 '본토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연말께 30평 규모의 점포를 추가로 꾸밀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