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혁신 시대를 열자] 제2부ㆍ끝 : (6) '장점들을 결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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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SONY! (미안해 소니!)'
한 국내 중소기업이 2001년에 만든 광고문구다.
삼성전자라면 모를까 중소기업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광고카피를 사용했을까.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광고의 주인공이 휴대용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를 만드는 레인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워크맨 신화를 이룩한 휴대용 오디오기기의 대명사 소니의 아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새로운 강자이기 때문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 광고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니가 워크맨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야심차게 선보인 MD(미니디스크) 플레이어는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반면 아이리버는 국내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음악재생 소프트웨어의 장점인 대규모 저장용량에 워크맨의 휴대성을 결합해 만든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서다.
인터넷으로 컴퓨터에서 음악파일을 내려받아 전용 소프트웨어로 감상하는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들이 속속 MP3플레이어의 열성적인 고객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1999년 창업당시 12억원이던 레인콤의 매출은 5년만인 지난해 2천2백9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영업이익은 5백54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도 50%에 육박하며 대기업인 삼성전자(20%)를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플래시메모리형 MP3플레이어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휴대용 오디오기기 시장을 장악하던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은 이제 MD플레이어의 실패를 자인하고 한국기업들이 개척한 휴대용 MP3플레이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소니 등 일본업체들의 실패는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
이들 기업들은 지난 20여년간의 워크맨 신화에 안주해 기존 제품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휴대용 오디오기기 모델을 잇달아 내놨다.
가치혁신을 게을리 한 것이다.
워크맨에 이어 CD플레이어가 히트를 치자 그와 유사한 MD플레이어를 계속 선보였다.
워크맨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던 성공 경험을 잊은듯 했다.
하지만 레인콤을 비롯한 국내 휴대용 MP3업체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소니와 달리 유사한 제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휴대용 오디오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컴퓨터에 음악파일을 내려받아 감상하는 비(非)고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소비자들이 휴대용 MP3플레이어에 주목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기능성이 뛰어나서다.
워크맨은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많아야 15곡 정도 수록할 수 있으며 녹음속도도 곡당 4∼5분이 소요됐다.
재생이나 녹음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음질도 쉽게 떨어졌다.
소니가 후속제품으로 내놓은 CD플레이어나 MD플레이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인터넷으로 PC에 음악을 내려받아 '윈앰프' 같은 음악재생 소프트웨어로 들으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드디스크 용량에 따라 수만곡 이상 저장이 가능한데다 다운로드 속도도 수초 내외로 아주 빨랐다.
여러번 음악을 들어도 음질이 변하지 않았다.
많은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들이 워크맨보다 음악재생 소프트웨어를 선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이동하면서 음악감상을 하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레인콤을 비롯한 휴대용 MP3플레이어 업체들은 워크맨과 음악재생 소프트웨어의 장점을 결합시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했다.
워크맨보다 크기를 더 작게 해 휴대를 간편하게 한데다 수백곡 이상 수록할 수 있도록 저장용량도 늘렸다.
컴퓨터에서 새로운 곡을 입력받는 시간도 워크맨 녹음시간의 10분의 1선으로 낮췄다.
음질도 음악재생 소프트웨어 수준을 유지하게 했다.
플래시메모리형 제품의 경우 충격에도 강했다.
워크맨과 음악재생 소프트웨어라는 다른 종류의 음악재생기기들간의 장점을 합친 결과 비고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새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기술적인 장벽이 거의 없기 때문에 초창기 1백여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승부는 그래서 디자인에서 났다.
양덕준 레인콤 사장은 "인터넷 사용자에게 친숙한 기능에 세계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결합하면 휴대용 음향기기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레인콤은 디자인 전문업체인 이노디자인에 디자인을 전적으로 맡겨 프리즘이나 항공모함 모양을 본뜬 역동적인 형태의 플래시메모리형 MP3를 출시했다.
빠른 신제품 출시 주기도 레인콤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는 MP3플레이어의 주고객인 10,20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3개월마다 하나씩 신제품을 출시해 있다.
레인콤은 올 상반기에만 13개의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리버의 가격은 20만∼30만원대로 10만원대인 워크맨이나 CD플뮌潔咀릿?두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기능과 디자인을 높이 사는 소비자들은 가격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실제 국내 10대 남학생들의 경우 CD플레이어보다 MP3플레이어 보유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레인콤 등 국내기업들이 개척한 휴대용 MP3플레이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디지털시대의 워크맨 신화를 일궈나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MP3플레이어 판매대수는 전년에 비해 1백9% 증가한 1백15만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세계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 MP3 판매대수는 전년대비 83% 늘어난 7백50만대, 1조5천억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는 2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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