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원리와 조화되는 노사정책..김인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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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 시장경제 운영위원장 >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나는 변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민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은 일반적으로 노조 편향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그의 기존 노사(勞使)관이나 정부 노사정책의 변화를 암시한 것 같아 기대된다.
노사관계의 안정 내지 개선 없이 우리경제의 장래가 없다는 것은 일찍부터 내외 경제전문가들이 공감해 왔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운용방향과 조화되면서 노사관계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정과 개선을 가져 올 정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간 몇 차례 정부가 바뀌어도 노사정책과 그로부터 이뤄지는 노사관계의 근저에는 시장원리와 조화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인식과 반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바람직한 노사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노사관계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이해가 상반되는 두 당사자간의 갈등 관계인데 이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사정책의 기본이 돼야 할 대화와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규범의 마련은 이러한 갈등관계를 전제로 할 때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화해니 대타협이니 하는 협력적 노사관계는 이를 바탕으로 그 다음 단계에서 추구돼야 할 과제다.
그런데 오히려 이 과제가 먼저 추구됨으로써 노사관계의 규범적 성격이 모호하게 되고 정치적 접근이 주를 이루는 파행을 낳고 있다.
둘째, 노사관계는 노동의 공급자인 근로자들과 노동의 수요자인 기업간에 이루어지는 수요 공급의 문제, 즉 시장에서 해결돼야 할 경제문제인데 이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던 군사정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선거에 의해 정통성을 확보한 정부에서도 여전히 노사문제를 주로 정치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세번째 특징은 노사관계에 있어서 정부의 잘못된 역할이다.
정부는 개별기업의 노사가 법테두리 내에서 협상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개입해서라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노·사 당사자나 언론,일반국민들이 정부에 거는 기대도 그렇다.
정부가 노사현안의 당사자로서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다 보니 노사관계는 노정(勞政)관계로 바뀌고 노사관계 규범 제정자,노사분쟁 심판자로서의 정부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네번째는 노사문제를 개별기업 단위보다는 업종별 산업별, 나아가 국민경제 전체가 노(勞)와 사(使)로 편가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는 시각이다.
이미 세계 경제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고 이를 향해 각국은 생존 차원에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IMF사태 이후 강력하게 추진한 기업개혁의 본질도 바로 이 것이다.
그런데 기업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노사관계는 개별 기업의 문제로 보다 집단적인 방식에 의해 해결할 문제로 인식하는 모순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별 노조 중심이나 상설의 '노사정 위원회'에서 주요 노사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바로 이런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이외에도 한국 특유의 노사 관계나 행태들, 즉 매우 저조한 노조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극히 전투적인 강성 노조의 존재, 끊임없이 기업경영자를 공격하면서도 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전임 노조 간부의 존재와 이들의 귀족화 현상,있어서는 안될 사업장 내에서의 쟁의 행위와 이로 인한 기업 활동의 대안 없는 중단 등도 앞에서 쓴 기본적인 특징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국정책임자로서 변했다는 대통령의 말이 이상의 문제인식에 바탕을 두고 시장원리와 조화되는 방향으로 노사정책의 방향을 재검토할 것을 암시하는 발언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노사관계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은 여전히 요원할 것이고 그의 발언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요인이 될 가능성이 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