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국내 경기 상황에 대해 "원자재 가격 상승과 더불어 국내 정치ㆍ사회적 문제가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이달 콜금리 목표치를 현 수준(연 3.75%)에서 8개월째 동결키로 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수출과 생산은 잘 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는 여전히 부진한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불황과 원자재난이 계속될 경우 개인에 이어 중소기업도 신용불량의 덫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힘 잃은 2분기 회복론 박 총재는 경기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표현을 썼다. '언제부터 회복될 것'이라는 투의 특유의 낙관론은 찾기 힘들었다. 박 총재는 일단 지난 2월 이후 도소매 판매 등 일부 소비지표와 고용지표 등이 호전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2분기(4∼6월)부터 체감경기 회복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예상외로 가파르고 국내 정치ㆍ사회문제 등 여러 제약 요인을 감안할 때 실제로 경기가 좋아질지는 두고봐야 한다"며 극히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 정부에 물가대책 'SOS' 박 총재는 "현 상황에선 물가안정 목표(2.5∼3.5%)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원자재값 상승세가 연중 지속되는 등 최악의 경우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에 이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유가나 원자재값 등 비용요인(cost-push)에 의한 물가 상승은 통화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정부의 조세ㆍ환율ㆍ무역정책을 한꺼번에 묶은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이 물가 안정에 나서 달라고 SOS를 친 셈이다. 정부의 고(高)환율 정책이 물가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선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잘 되는 장점이 있지만 수입물가에는 큰 부담이 된다"며 "근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환율 하락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의 환율 방어 정책에 동조했던 종전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 중소기업 신용불량 사태 우려 박 총재는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에 대해 "경기 침체 상황이 이어진다면 앞으로는 중소기업의 신용불량 문제가 걱정거리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며 "여러 가지 대책을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은은 저리 정책자금을 중소기업의 원자재 구매 등에 대폭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