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쓴소리' 외면하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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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전략 마련에 적극 참여해왔으며 여론 조성 및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0일 산업연구원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한·일 FTA 무용(無用)론 파문'기사에 대한 산업연구원의 해명자료 말미에 적혀있던 '사족(蛇足)' 문구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자존심 센(?) 국책연구기관이 누군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낯뜨거운 문구까지 삽입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은 자료에서 "본의와 다르게 기사 '제목'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으며 정부 협상단이 유념해야 할 사항을 지적한 보고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 역시 해명자료를 내고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외교부는 "한·일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엄밀하고 타당한 분석을 실시하지 않아 분석자료로 인용하기 부적합하다"며 애써 의미를 깎아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한·칠레 FTA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정부의 FTA 추진에 '구정물'을 튀기는 국책연구기관이 서운할 수도 있었겠지만,외교부의 대응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정책추진에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부의 '립 서비스'를 견제하는 것이 매년 수백억원의 연구예산이 책정되는 국책연구기관의 또 다른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만 양산하는 국책연구기관은 있어서도 안되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과의 교역에서 사상 최대인 1백9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한·일 FTA 체결로 인한 수입 증대와 중소기업 피해 문제를 제기한 산업연구원의 충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외교부가 '훌륭한 협상조건'이라고 자평했던 한·칠레 FTA는 협정 체결후 발효까지 농민단체 등의 반발을 설득하느라 1년6개월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이 소요됐다.
외교부가 한·칠레 FTA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대오각성(大悟覺醒)'했기를 바라는 건 기자만의 지나친 욕심일까.
이정호 경제부 정책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