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판관별로 자료 검토에 착수하고 국내외 사례를 수집하는 등 외형상으로는 차분하고 정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재판 진행 절차를 꼼꼼히 살펴보면 사건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한 배려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례적으로 탄핵 관련 싱크탱크를 구성하고 탄핵심판 접수 직후 절차를 시작했다. 다만 최종 결정을 언제 내릴지에 대해선 국민 통합이나 '4ㆍ15 총선'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정중동(靜中動) 속 잰걸음 헌재는 지난 12일 탄핵심판 접수 2시간 만에 청와대 국회 선관위 법무부 등에 의견서를 보냈다. 보통 사건의 경우 접수를 받아 주심 재판관에게 보고한 이후 답변 요청서 발송까지 2∼3일가량 걸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통지서 발송 때에는 30일 이내에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게 관례지만 이번에는 말미를 훨씬 짧게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헌재의 의지는 첫 평의를 오는 18일 갖기로 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재판관 전원 참석으로 사건을 심리하는 평의는 주심 재판관이 충분한 기간을 두고 평의 요청서를 배포한 뒤 재판관 협의를 거쳐 열린다. 따라서 첫 평의까지 상당한 기일이 걸리지만 이번엔 채 일주일도 안 걸렸다. 첫 평의에서는 첫 변론기일 지정에 최우선 순위가 두어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법상 서면심리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헌법 소원이나 위헌 심판 제청과 달리 탄핵심판의 경우 구두변론을 거치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다. 첫 변론기일은 이달말께로 관측되고 있다. 이후 일정은 피소추인인 노무현 대통령이나 소추인인 법사위원장(국회) 등이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주요 변수여서 가늠이 힘든 상황이다. ◆ 결정 시점은 미지수 탄핵심판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총선 이전에 내려질지, 아니면 총선 이후로 넘어갈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야당의 탄핵 의결에 대한 찬반 의견이 4ㆍ15 총선 열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헌재 결정이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첫 변론에 출석한 노 대통령이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진술을 내놓는다면 최종 결정은 시한(1백80일)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이 높고 국회 탄핵절차에 대한 적법성 시비까지 불거지면서 충분한 심리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결정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야당은 탄핵 결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그에 따라 높아지는 여당 지지도 등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윤영철 소장은 "헌재는 총선에 개의치 않으며 헌법질서에 따라 헌법정신과 절차를 준수할 것"이라며 "정치적 고려없이 되도록 신속하게 판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