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기를 희롱하지 말라 .. 金榮奉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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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성진(弄假成眞)은 가짜로 희롱하다 진짜를 만들어 버린 삼국지 일화중 하나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친 손권이 형주(荊州)를 접수하려다보니 그 땅은 유비가 이미 가로챘다.
이에 손권은 미인계(美人計)를 시도한다.
늙은 유비를 아리따운 제 누이와 혼인하자고 꼬여 유괴하고 그를 형주와 교환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제갈량이 요로에 손을 쓰고 소문도 나고 손권의 모친 또한 유비를 좋아해 가짜로 꾸민 혼사가 진짜 성사되고 말았다.
결국 손권은 형주를 잃고 누이도 잃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농담처럼 시작됐다.
당초 탄핵논의는 궁지에 빠진 야당이 그저 국면을 흔들어 보려는 허세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오기와 기자회견 내용이 지리멸렬하는 야당을 결집시켜 소설처럼 탄핵결의가 성사됐다.
삼국지와 다른 점이라면 야당이 꾸민 일을 대통령 자신이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노 대통령은 "국회가 하는 탄핵소추"를 무시했다.
이제 여권은 한달 임기를 남긴 국회에 권한이 없다며 '국민을 무시한 만행이다, 쿠데타다'며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는 국회고유의 권한이고 기능이다.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헌정질서 파괴행위가 될 수 없다.
탄핵받은 대통령을 복귀시킬지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재단할 일이고, 대통령의 정치행태나 국회의 소추행위가 '정당했는가' 여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민주헌법에 장비된 정치제도가 가동한 것일 뿐이다.
온전한 외부세계가 한국정치를 멸시할 일도 한국경제를 기피할 일도 없다.
다행히 총리 이하 대행체제를 맡은 내각은 이미 원숙한 관리능력을 보여주었고, 단기적 경제불안파장도 불식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왕조시대 나라님을 잃은 듯 망연자실해 소동한다면 그 나라 그 국민은 누구도 못구한다.
스스로 상상한 허깨비가 사실로 둔갑해 정말 세계가 한국을 비웃고 상대 안할 꼴을 자초하는 것이다.
작금 일부 방송과 시민단체는 이런 허깨비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탄핵은 국민과 헌정질서를 저버린 망동이다, 전국 방방곡곡 국민 모두가 규탄한다,외국인에게 수치스럽다, 이 허탈감으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면 어찌하나…."
소심한 시민은 모두 숨고 일부 집단이 추리고 손질한 여론은 뉴스를 타고 확대 재생산된다.
촛불집회가 때를 만나고 공중파방송은 연일 이를 선전해 손님을 끈다.
농간으로 만든 난장판(havoc)이 진짜로 실현될 때까지 이들의 놀이판은 끝날 것 같지 않다.
한국처럼 여론몰이가 좋은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지 모르겠다.
천만 이상이 '실미도'를 보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더 많이 보고, 이 소문난 명작 이외에 다른 작품과 문화세계는 거들떠도 안보는 것이 우리 국민, 특히 새 세대이다.
이렇게 자아형성이 안된 국민,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정치집단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당면한 가장 위험한 불확실성의 요인이다.
오늘날 세계의 관심사는 경제다.
그러나 지난 한해 한국은 반미 분배 평준화 참여에만 몰두했다.
스스로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투자를 기피하고 일자리를 없앴다.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는 도내 2만9천여 등록 공장 중 작년 상반기에만 2천1백62개가 탈출했다고 전한다.
반년만에 당시까지 중국으로 이전한 누적수치 1천4백43개의 한배 반이 탈출한 것이다.
설문조사한 5백개 기업 중 45%가 1∼2년내에 중국으로 진출할 의사를 가졌다고 한다.
실로 한국 기업환경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사례이다.
현상이 이러한데 새삼스레 어떤 리더십 부재 효과가 걱정되는가.
세계는 한국의 탄핵정국을 물론 지켜본다.
그러나 그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맞아 한국민이 얼마나 민주적 정치절차로 소화하는가를 지켜본다.
주견없이 방황하는 국민수준만 본다면 그들은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날 것이다.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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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경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