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이버 언어폭력, 이대론 안된다..金日秀 <고려대 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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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을 전후해 탄핵 찬반 공방은 여의도 공간을 멀리 벗어나 버렸다.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항의 집회가 규모만 커진 게 아니라 구호도 격렬해졌다.
광분한 어떤 이들은 시민사회 질서 규범의 틀을 아예 벗어나 막무가내 식으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합법적 쿠데타'를 응징한다면서 실제 '비합법적 쿠데타'를 연출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아무리 탄핵소추가 대한민국 초유의 일이라 해도,법과 질서가 살아 숨쉬는 사회라면,그 흥분을 광분으로 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집을 나간 193마리의 미친개를 찾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탄핵투표에 참가한 1백95명의 국회의원 이름이 적힌 유인물까지 살포했다니,이쯤 되면 정상 궤도를 벗어난 게 틀림없다.
더욱 한심한 광경은 바로 사이버공간을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린 일부 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이다.
자신들은 익명의 가면을 쓰고,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해 가며 온갖 욕설과 인신 공격을 쏟아붓는가 하면 4·15총선에서 심판하자,낙선시키자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마침 중앙선관위와 경찰에서 이를 선거법 위반사례로 보고 집중 단속에 나서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시민사회의 지평을 바라보는 침묵하는 다수로서는 난감하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시민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와 너의 사이에 그다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인격으로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삶의 터전이 바로 시민사회이다.
아무도 이 공동생활의 정원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된다.
사이버 사회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자유를 향유하고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진 인격주체들이 이 가상공간에서 너와 나의 사이를 마주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자유를 빙자해 타인의 자유와 인격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실상 자유가 아니라 일탈이며 범죄일 뿐이다.
사이버 세계도 삶의 질서가 잡힌 정원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정원에 잡초나 독버섯의 씨앗을 함부로 뿌리고 다녀서는 안된다.
서로를 위해 정성스레 가꾸어야 한다.
보기에 흉한 잡초는 뿌리를 뽑아 불살라버리는 게 자연이 가르쳐주는 질서원리이다.
고대사회로부터 전래되어 온 황금률도 오늘 여기 사이버세계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남이 너에게 하지 말아야 될 일을 너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서 대접받고자 하는 바를 먼저 남에게 대접해야 한다.
황금률은 바로 사이버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네티즌들 상호간의 공존에도 필요한 생존질서의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건전 정보들을 뽑아내는 수고에 골몰하고 있다.
물론,최악의 경우에는 경찰·검찰의 철퇴가 내려져야,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을 통제할 수 있다.
오늘날 오프라인에서 공유하는 삶의 터전은 에티켓 하나만 제대로 지킬 수 있어도 건강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온라인 정원은 더 더욱 그렇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하는 식탁에서도 문화시민은 식탁의 에티켓을 생명처럼 소중히 간직한다.
그래서 누구도 식탁을 마주하고 가래침을 내뱄거나 오물을 토해내지는 않는다.
문명사가인 엘리아스는 서양식탁의 에티켓이 각 사람의 변태와 고집들을 꺾고 오늘날의 표준에 이르는 데 무려 7,8백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그렇게 학습되기까지 끊임없는 채찍과 혹독한 교정훈련이 뒷받침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이버공간의 언어폭력,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곳은 각자가 세계를 향해 마주서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펼 수 있는 여론광장이다.
때문에 네티즌 개인의 사회성과 책임은 현실세계에서보다 더욱 높게 요구된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개인들 때문에 이 사이버세계의 여론광장이 전장 같은 무법천지로 변질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증오의 적이 아니라 바로 내 사랑의 이웃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한 때다.
ilsukim@korea.ac.kr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