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피지] 파란 신비속에 '녹색 보석'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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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멍할뿐이다.
쪽빛 투명한 하늘과 바다, 그 색깔 그대로를 걸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 밖에 달리 할일이 없다.
'불라'(안녕하세요)하며 지나가는 원주민이 없었더라면 망부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바닷물에 살짝 발을 담근다.
너무나 신비스런 색깔을 망쳐놓을 것도 같아 조심스럽다.
온몸이 리트머스 시험지인 양 무릎 아래에서부터 파랗게 물들어 온다.
색깔에 홀려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니 알록달록 고기떼가 애인을 반기듯 몰려든다.
발을 간지르는 놈, 솟구치며 환영하는 놈, 놀자고 친구까지 몰고 오는 놈.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이 놈들하고 장난치는 것도 힘이 든다.
산호바위에 앉아 다시 고개를 숙이고 또 치켜들어도 온통 파란게 같은 색이다.
남태평양의 섬 피지는 그렇게 파랑 한 색으로 제모습을 펼쳐보인다.
범선이 흘러간다.
모두들 목적지가 어디인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디를 바라봐도 좋은데 더 좋은 곳이라니.
구름의 변화에 탄성이 쏟아지고, 수심 따라 변하는 물 색깔에도 넋이 나갈 지경인데….
몬드리키 섬이 가까워오자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진다.
할리우드의 대스타들이 피지에 오면 모두 들렸다는 섬이니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때 2m는 됨직한 물고기가 배 뒤전에 끌고 다니던 낚시줄에 걸려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미끼도 달지 않은 엉성한 낚시도구에 그렇게 큰 물고기가 걸리다니.
그런 곳이 또 피지란다.
섬의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장승처럼 서있는 야자수가 먼저 반긴다.
피지에선 어디에서든 윗사람(추장)에게 먼저 가 출입허가(카바의식)를 받아야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다.
외지 사람이 오면 '당신을 친구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막걸리(전통 음료인 양고나)같은 것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한잔씩 마신다.
만드는 과정을 보니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데 환영의 의미를 담은 잔이니 거절할수가 없다.
맛이 맹맹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추장에게 인사도 했겠다 톰 행크스가 열연했던 영화 '캐스트어웨이' 촬영장으로 향한다.
배가 닿기도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누군가 '상어 지나간다' 크게 외쳐도 상관없다는 투다.
시간 가는 것이 아쉬울뿐이다.
내친김에 섬의 최고봉(1백50m) 등정에 나선다.
원주민처럼 맨발에 팬티차림으로 거친 정글 숲을 헤치고 오른다.
군데군데 영화 세트장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을 오른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는 원주민의 격려를 받아가며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는다.
정상에 오르니 또 하나의 색깔이 기다리고 있다.
점점이 박힌 섬들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하다.
셔터만 누르면 명작이 나올 것 같다.
누군가 한마디 덧붙인다.
"눈 감고 찍어도 됩니다."
되돌아가야할 시간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야속할 뿐이다.
냉장고(바다)엔 물고기가 가득하고, 창고(나무)엔 과실이 넘쳐나는 피지.
저문 바다에서 저녁 찬거리 한 마리를 꺼내 들고 나오는 원주민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스럽다.
어디서나 들리는 통기타 소리에 베짱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같지만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불라 불라',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까지 취해주는 순박한 모습.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먼지에 찌든 여행객의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부레(집)엔 시계 하나, 텔레비전 하나 없어도 온 가족이 살갑게 살아가는 모습.
그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에 남을 피지의 드러나지 않은 색깔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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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피지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3백30여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한국의 경상남북도 크기.
인구는 80여만명.
날짜변경선에 위치해 있어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뜨는 곳이다.
2000년 1월1일 전 세계의 언론이 새로운 세기의 첫 일출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 빠르다.
입국비자는 필요없다.
미국 달러화가 통용된다.
대한항공이 매주 월ㆍ금 2회 피지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9시간30분 안팎.
피지는 맨발로 걸어다녀도 좋을만큼 깨끗해 남태평양 국가중 유일하게 풍토병이 없다.
부락을 방문할 때 모자를 쓰는 것은 촌장을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돼 쫓겨날수 있다.
피지인들은 머리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머리를 만지는 것을 금기시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 관광포인트.
그러나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 떠나면 더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겠다.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려본다든지, 무인도로 둘만의 제국을 건설하러 간다든지, 뗏목을 타고 원주민들과 고기를 낚아보든지, 원시림속으로 들어가 타잔이 되어 보든지 피지는 색다른 추억을 만들수 있다.
루카스여행사(02-884-4490)에서 피지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4박6일 일정으로 숙소에 따라 마나리조트 1백59만원, 워익리조트 1백59만원, 쉐라톤 1백49만원.
피지정부관광청 (02)3452-5093
피지=여창구 기자 yc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