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합작,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은 두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하이닉스의 앞날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공장을 보유, 경쟁국들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 하이닉스와 ST마이크로의 제휴 배경
하이닉스와 ST마이크로의 인연은 지난해 4월에 맺어졌다.
두 회사는 당시 낸드(NAND)형 플래시메모리를 공동 개발키로 했다.
시스템 LSI 외에 노어(NOR·코드저장)형 플래시메모리만 일부 생산해온 ST마이크로로서는 휴대폰 캠코더 등 디지털 기기의 새로운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낸드형 제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으며, 플래시메모리 사업에 뛰어든 하이닉스에는 새로운 제휴선이 필요했다.
두 회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하이닉스는 지난달부터 ST마이크로에 월 1만장 수준의 5백12메가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ST마이크로는 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될 D램과 플래시메모리가 자사의 사업 역량 강화에 긴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주력 품목인 시스템 LSI의 고도화ㆍ집적화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외부에서 조달해오던 D램이나 플래시메모리를 자체 충당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는 것.
인텔을 비롯한 경쟁사들이 속속 중국으로 집결하고 있는 상황도 ST마이크로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이닉스는 금융 투자자보다는 동종 업계에서 이해를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가 향후 중국 사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ST마이크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하이닉스가 최근 2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내기는 했지만 수조원이 들어가는 반도체 라인 건설에 홀로 투자하기에는 위험이 크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하이닉스
하이닉스는 ST마이크로와의 글로벌 제휴로 회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전망들을 일거에 걷어내고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제휴선인 ST마이크로가 반도체사업 규모 면에서 세계 D램 1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맞먹는 회사라는 점에서 하이닉스의 대외 신인도 제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시장을 직접 공략할 수 있고 ST마이크로를 끌어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상계관세 부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이닉스가 5억달러의 투자금을 받는 대신 ST마이크로측에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국 공장의 지분을 내줄 수도 있고 하이닉스 본사가 CB(전환사채)를 발행해 지급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채권단이 최대주주로 있는 하이닉스의 향후 매각 작업에 어떤 형태로든 ST마이크로측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 유진 공장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중국 공장이 글로벌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그렇다.
하지만 합작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당장 ST마이크로측이 하이닉스 경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오는 2006년까지 원리금 상환을 유예한 상태에서 하이닉스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은 데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공장을 유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첨단 반도체 기술 유출 우려
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은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집요하게 현지 공장 건설을 요구해 왔다(삼성은 현재 중국에 조립라인만 두고 있다).
반도체 기술 없이는 전자산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은 하이닉스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반도체 분야에서도 강자로 올라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하이닉스로서는 중국 내 판로를 확보하고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겠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는 부메랑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