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네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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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훌리건(hooligan)들이다.
이들은 축구에 열광한 나머지 도가 지나쳐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기 일쑤고 폭동을 일으킨 사건도 부지기수였다.
이들 때문에 1964년 페루-아르헨티나 간의 경기에서는 무려 3백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불상사가 발생했고,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한국의 월드컵 경기때 치안당국을 바짝 긴장시킨 것도 훌리건들이었다.
과격 극성팬을 지칭하는 훌리건이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특정집단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이들은 비방 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는가 하면 사이버테러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훌리건들이 극성을 부려 정당의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여러번 일어났다.
소위 '정치 훌리건'으로 불리는 이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절차와 형식을 무시한 무책임한 글로 도배질하면서 건전한 토론문화를 해치는 주범으로 등장한 것이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초고속 인터넷망이 오히려 사회분열을 부추기고 갈등을 낳는 역기능의 현장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내편' 아니면 '네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횡행하면서 중립지대는 이미 설 땅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소리와 흑색선전은 보통이고 적대감을 넘어 살기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게시판을 떼지어 몰려 다니며 욕설로 도배질하는 '사이버 훌리건'도 극성이라고 한다.
자칫 글을 잘못 썼다가는 욕설과 협박을 당하기 십상이고 교육사이트에도 욕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 인터넷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인터넷상의 훌리건들은 본래의 훌리건과 구분하기 위해 네티즌과 훌리건의 글자를 조합한 네티건(netigan)으로도 불리는데,인터넷이 네티건들에게 휘둘려지는 한 우리 사회의 천박성이 더욱 심화될 것임은 자명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