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코리아] 1부 : (3) '판치는 규제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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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9일.
게임물 심의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Ⅱ'를 성인물인 '18세 이용가'로 판정했다.
캐릭터의 속옷이 비쳐 음란성이 있는데다 상대편 게임 캐릭터를 공격할 때 아이템이 소멸돼 폭력성도 있다는 이유였다.
업계와 게이머들은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었다.
이 게임은 불과 보름전 미국 게임등급심의기관인 ESRB에서 '13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더구나 영등위 조차 10개월전 '15세 이용가' 예비판정을 내린 터였다.
영등위 관계자는 "심의위원이 바뀌었고 예비판정 당시에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게임업체들의 단체인 게임산업연합회는 급기야 투명하고 객관적인 심의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태로 번졌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국내 게임산업의 가장 큰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가 영상물등급위원회"라고 지적했다.
영등위의 게임심의 잣대가 명확하거나 체계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게임이 어떤 등급을 받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창작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 생사여탈권을 움켜쥔 영등위 =영등위의 등급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에는 '리니지'에 성인물 판정을 내려 물의를 빚었고 최근에는 어린이용 게임인 '카운트 스트라이크'와 '비앤비'마저 18세 이용가 판정을 내렸다.
게임등급은 유해성 정도에 따라 청소년의 게임이용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위정현 교수는 "이 때문에 게임등급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우면 게임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들어 청소년 이용자가 많은 게임이 성인물로 판정받으면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에 영등위는 최근 심의기준 개정안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기준을 비교적 세분화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무료서비스하면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유료화게임이 사행성을 부추긴다며 규제수위를 높인 점은 '개악'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게임브릿지의 유형오 사장은 "일정한 폭력성과 사행성을 가미, 경쟁심리를 자극하는게 게임의 본질"이라며 "개정안은 재미없는 게임만을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행성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청소년보호를 빌미로 중소게임업체들을 고사시키려는 극약처방"이라고 반발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심의위원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편견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지 않도록 사회 전반의 의견을 수렴, 보편적인 사고를 기반으로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심의기준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게임등급기구와 심의기준제정기구를 분리해야 =영등위는 심의기준제정권과 등급심사, 사후관리권 등 규제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영등위가 독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문화관광부는 자율심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 일본 등 게임선진국에서 자율심의제를 도입,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자율심의제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게임평론가 박상우씨는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인식이 좀 더 개선된 뒤에 자율심의제로 나아가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자율심의제에 앞서 영등위가 게임등급심의를 맡되 심의기준제정권은 별도 기구에 넘겨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성 남서울대 교수는 "현행 제도에서는 영등위가 게임의 감시권은 물론 경찰권까지 틀어 쥔 형국"이라며 "영등위의 권한을 분산하지 않고는 합리적인 게임물 등급심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