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 유조 회장은 아사히 맥주의 오늘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슈퍼 드라이를 히트시켜 극적으로 회사를 회생시킨 마케팅의 전사. 작은 키에 휘날리는 흰 눈썹이 매서운, 다부진 인상이다. 작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어 기자로서는 구면이다. 그는 놀랍게도 작년 이맘때쯤의 일본 신문들을 펼쳐놓고 기자를 맞았다. "정 부국장. 작년에 당신은 이런 말을 했군. 일본식 경제구조가 온존하는 한 일본의 경제 회복은 매우 더딜 것이라고…." 그는 고개를 들고 기자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때? 1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시는 소감이…." 세토 회장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 들어보였다. 그의 탁자에는 지난해 도쿄의 한 세미나에서 기자가 했던 말을 인용 보도한 두 세 가지 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기자의 '2004 봄 일본경제 스케치'는 이렇게 한방 세게 얻어맞으면서 시작됐다. 7박8일의 일정. 하루에 6개가 넘는 세미나와 미팅을 소화해내야 하는 강행군. "구조조정은 어떻습니까. 은행들은 여전히 거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을 텐데요." 기자가 쉽게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조조정? 그것도 어느 정도 일단락은 되었다고 봐야지. 감각적인 수치로 70%는 해소됐어. 이번 3월 말 결산에서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널렸어. 내수도 살아나고 있고 주가도 견조하고…." 30년생, 우리나이로 일흔 하고도 다섯에 들어선 붉은 얼굴의 세토 회장은 불을 뿜듯 말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누구든 그와 말하다보면 그의 열정에 감전되고 만다는 말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잘해요. 물론 언론은 언제나 페시미즘이니까…. 언론보도만 보면 곤란해." 세토 회장의 굵은 목소리가 넓은 접견실을 펴져나갔다. "일본인은 이상한 민족이오. 스스로를 폄훼하는 것을 겸허하다고 생각하니까. 지난 10년은 물론 상실의 시대였지. 그러나 지금은 의욕들이 넘치고 있어. 디플레가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해볼 만해." 세토 회장의 자신감 넘치는 '경기 회복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은 짧은 일본 방문이나마 널려 있었다. 물론 언제나 강력한 반대증거들과 함께였다. 백화점 판매실적이 전년보다 늘었다는 보도와 함께 바로 세토 회장이 일하는 맥주 시장은 아사히를 제외하고는 8%나 매출이 줄었다는 스크랩을 기자는 휴대하고 있었다. 양주와 맥주 소비가 줄고 소주 판매가 늘어나는 것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불황의 특징으로 분류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주류간 카테고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역시 비슷했다. 그의 아사히 맥주 역시 보해소주를 수입해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의 노력 덕분으로 도쿄 시내 주점마다 기자도 즐겨마시는 한국산 소주들이 경쟁적으로 팔리고 있다. 그러나 세토 회장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세토 회장이 비난한 바로 그 일본의 언론인들을 만났을 때, 경기회복론은 대기업의 얘기일 뿐이라거나,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낮아지고 있는데 무슨 경기회복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기자가 서울로 돌아온 다음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국민의 무려 84%는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자료를 보더라도 수치상으로는 상승 커브가 뚜렸했다. 윗목까지 온기를 느낄 정도라면 이는 경기회복이라기보다는 호황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역시 일본은 강력한 회복세를 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일ㆍ한 경제협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세토 회장으로서는 한국의 경제나 정치 역시 지대한 관심사였지만 최근의 탄핵 정국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을 잘 아는 그의 배려였을 것이었다. 정규재 < 부국장 jk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