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환율이 슬금슬금 떨어지며 달러당 1천1백5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엔화가치 강세(엔ㆍ달러환율 하락)에 따른 동조화 결과이지만 예전과 달리 외환당국의 시장개입 움직임이 소극적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구두개입이나 환율 지지용 달러매수 주문이 뜸해진 것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원유ㆍ원자재값 급등에 따른 물가불안 우려로 재경부가 시장개입 고삐를 늦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재경부가 시장개입으로 쌓아놓은 달러 물량(현물 및 선물환 매수초과포지션)을 조금씩 털어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환율이 추가 급락할 경우 언제든 다시 개입할 전망인데다 외국인 배당금(7조2천억원 추정) 송금을 위한 달러매수 수요도 많아 환율이 1천1백50원선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 아리송한 재경부 행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내려진 지난 12일, 원ㆍ달러 환율은 하루만에 11원80전이나 치솟으며 단숨에 1천1백80원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곧바로 내림세에 접어든 환율은 탄핵이후 8일간(영업일 기준) 22일 단 하루를 빼곤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24일엔 연중 최저치(2월18일 1천1백52원20전)에 근접한 1천1백54원60전까지 낮아졌다. 이처럼 환율이 하락한 것은 엔화환율이 단기간에 달러당 1백12엔대에서 1백6엔대로 급락한데다 수출대금 환전용 달러 매도주문도 꾸준히 유입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재경부가 다음달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하는 등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환율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진우 농협선물 부장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비행을 하면서 인위적인 고(高)환율 정책으로 인한 물가 불안을 외환당국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 딜러는 "탄핵사태를 발판으로 재경부가 환율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며 "지난해 4분기이후 줄곧 쌓아놓기만 했던 달러매수 물량을 최근들어 조금씩 줄여나가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 1천1백50원선 지켜질까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재경부가 시장에서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당분간은 환율이 1천1백50원선 아래로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석태 씨티그룹 부장은 "재경부의 개입이 뜸해진 것은 외국인 배당금 수요의 출현으로 개입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뿐 환율을 방어하려는 기본 스탠스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