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박질하는 에너지 과소비 풍토에 기어가는 대책.' 정부가 최근 고(高)유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승용차 10부제 운행 등 에너지 소비절약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주요 조치 내용이 대부분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전례 답습'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10부제 등 승용차 운행제한 조치는 과거에도 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발동됐지만 에너지 사용절감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데다 승용차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서민들이 늘고 있어 각종 불편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시민운동단체인 에너지시민연대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절약조치에는 (겨울철 추위가 지나간 마당에) '적정난방온도 유지'와 같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 과소비구조를 뜯어고치는 등의 근본적인 '체질개선 처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산업용 전기 수요는 내수 침체로 인한 공장 가동률 저하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4% 소폭 증가한데 그친 반면 서비스ㆍ유흥업 등 일반용과 주택용(심야전력 제외) 전기 수요는 각각 4.9%와 1.9%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구조의 단면은 최근 대형차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소형차 구매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배기량 3천cc 이상 대형 승용차(영업용 제외)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7.7%에서 작년에는 9.7%로 확대되며 1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반대로 같은 기간 8백cc 미만 경차의 점유율은 7.7%에서 4.4%로 급감, 대조를 이뤘다. 이에 따라 한국은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2002년 기준)이 4.11TOE(석유환산t)로 △일본(4.09) △영국(4.00) △대만(3.65)을 웃도는 등 고질적인 에너지 과소비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절약에만 초점을 맞춘 과거의 단기적인 일회성 대책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보다 효과적인 대책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에너지 가격을 시장에 철저히 맡겨 합리적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자동차 운행 횟수를 줄이고 소형차 구매가 늘어나는 등 체질 개선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