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 범람하는 가운데 또 한권을 보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요. 스스로에게 엄격하려다 보니 2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근배 시인(64·재능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네번째 시집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문학세계사)를 펴냈다. 장편 서사시집 '한강'(1985)을 낸 이후 20년만이다. 1961년부터 64년까지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화려한 이력에 어울리지 않는 과작이다. "이육사 한용운은 평생 시집 한권만 남겼습니다. 많이 쓴다고 위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집은 20여년간 써온 시 중 60여편을 묶었다.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어린시절의 아픔,벼루를 포함한 우리 옛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자신과 시를 되돌아보는 시인의 모습 등을 진솔하게 담았다. '아버지는 깃발을 숨기고 사셨다/내가 그 깃발을 처음 본 것은/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운동회날 하늘을 덮던/만국기들 속에는 보지 못했던 그 깃발'('깃발' 중) 이런 아버지 때문에 간난의 세월을 보내다 떠난 홀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엿볼 수 있다. '가시방석보다 더 쓰리고 아픈/망백의 세월 훌훌 털어버리시고/언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는/지아비를 찾아 당신은 떠나셨습니다'('다시 냉이꽃' 중) 시인은 또 '내 언제 모자를 벗고/시 앞에 서 본 일 있었던가/헛되이 종이에 먹물만 칠해온/부끄러움이 앞섰다'('모자를 벗고' 중)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시에 다가서지 못하는 책망도 담아냈다. "오늘날 시의 패러다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민족사라는 큰 덩어리 속에서 시의 담론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언제 새 시집을 낼지 알 수 없지만 시라는 것에 눈을 뜨고 죽는 날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