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래도 봄은 온다 .. 이재희 <외국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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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ee.lee@unilever.com
봄이 성큼 다가왔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무에 물이 오르고 강남 봉은사 뒤뜰에는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하다.
때아닌 폭설로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겨울자락도 세월의 무게에는 어쩔수 없나 보다.
"세월도 가고 사랑도 가고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만 흐른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올해처럼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나이 탓만은 아닐 게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정치판의 저질 싸움은 드디어 탄핵 정국이란 전대 미문의 상황까지 치닫게 했다.
보통사람들의 걱정이나 안타까움에는 아랑곳 않던 그들이 야속하고 뻔뻔하기까지하다.
이제 17대 국회에서는 의석 수도 늘게 됐으니 더 많은 추태를 볼까 지레 걱정이다.
유행인지 돈이 없어서인지 어느 정당은 당사를 창고로 옮기고,또 다른 정당은 컨테이너 막사로 옮겼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더 청렴하고 불쌍하게 보여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지,그렇게 하면 국민이 원하는 정당이 될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또다른 정치쇼가 아니길 바란다.
이번만은 확실하게 물갈이 하자고 모두 들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선거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모두들 나라와 겨레를 위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애시당초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 안중에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당선만 되면 4년을 또 폼잡고 군림할 게 뻔하지 않나 싶다.
언제쯤 우리 생활이 신나고 윤택해 질지,언제쯤 경영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 시장을 내다볼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외롭고 참담하지만 누구에게도 기대할 게 없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 가야 할것 같다.
그래도 봄은 온다.
그야말로 약산의 진달래가 온 산야를 뒤덮는 봄은 꼭 온다.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기다리지 않아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참여정부가 기치찬란하게 외치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중심 국가'추진이나 '소득 2만달러 시대'가 봉은사 뒤뜰의 산수유만큼 활짝 필 날이 왔으면 한다.
그래야만 저질 정치판에도 봄이 올게다.
여유를 가지고 찬란한 봄을 기다리자.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신나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별반 기대할 것도 없지만 한심하고 무정한 정치인들에게도 봄이 오고 있음을 고함쳐 주고 싶다.
/유니레버코리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