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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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우리를 설레게 하는데 이는 기차여행에서 경험한 아련한 추억 때문일 게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꿈과 낭만을 키우던 일,배낭 하나 둘러메고 혼자 여행을 하면서 이웃 좌석의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즐거워하던 일,연인과 데이트하며 사랑을 키우던 일,차창에 기대어 남몰래 흘렸던 눈물,왁자지껄한 팔도 사투리에 정감을 느끼던 일 등이 다정하게 다가선다.
무엇보다도 기차여행은 완행열차가 제격이었다.
멈춰 서는 정거장마다 그 지방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데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 삶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이 내키면 당장이라도 내려 그곳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것도 완행열차가 가지는 매력이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학창시절의 이러저러한 사연들은 언제 들어도 푸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거의 반세기 동안 사람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서민들의 발 구실을 해 왔던 통일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이다.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노선이 전면 재조정되면서 기적소리가 멈추는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광복절에 맞춰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등장한 통일호는 당초 시속 80km의 특급열차였다.
증기기관차의 속력이 50km에 불과했으니 통일호는 그 빠른 속도로 승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만했다.
통일호의 명성은 1960년에 나타난 시속 95km의 무궁화호에 가려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1983년 새마을호가 출현하면서 완행열차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앞서 1967년 운행을 시작한 비둘기호가 한동안 가장 낮은 등급이었으나 2000년에 자취를 감추었다.
고속열차에 밀려 사라지는 통일호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수명이 다해 어쩔 수 없이 고철덩어리로 녹슬어 갈 운명이다.
이 기차에 배어 있던 시골장터 같은 훈훈한 분위기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뿐이다.
더욱이 통일을 기원하며 붙여진 '통일호'의 이름이 그 염원을 뒤로 한 채 사라진다는 사실이 섭섭함으로 다가온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