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국토 위로 고속철도가 달린다. 서울에서 부산이 2시간40분, 서울에서 목포가 2시간58분. 국토는 그만큼 좁아지고 전국이 반일생활권으로 다가선다. 1972년 경부고속도로가 등장한 이래 또 다른 교통혁명이다. 교통망은 일반적으로 국토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우리는 교통후진국이었다. 조선조 말까지도 우리의 간선도로는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면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고 초라했다. 영남에는 한발이 나고 호남에는 대풍이 들어도 식량을 제 때 운반하지 못해 수만명이 아사했던 것도 20세기 초의 일이다. 그 후 우리 교통망은 현대화됐다. 그러나 매년 스위스 경영연구원(IMD)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통부문 경쟁력은 언제나 중하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지금도 전국 도로 상에 나타나는 교통혼잡비용, 다시 말해 교통망의 부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22조원에 달한다고 교통개발연구원은 밝히고 있다. 이 때 등장한 고속철도는 우리 국토가 그만큼 선진화되고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의미이다. 이제 정부는 고속철도의 효과가 지방에 뿌리를 내리도록, 그리고 국민들의 철도문화가 정착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고속철도는 분명 지방에 긍정적이고 확실한 성장의 계기가 된다. 사람과 상품과 문화가 한 울타리에 들어온다. 어느 학자는 고속철도로 인해 전국이 반일생활권이 됨에 따라 전국이 수도권이 되고 지방도시가 위성도시가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이같은 구심력보다 서울에 집중된 기능을 오히려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신칸센 개통 이후 지방경제가 매년 3%씩 추가 성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방은 특성에 맞도록 고속철도 효과를 활용하고, 고속철도가 갈기갈기 갈라진 지역을 봉합하고 묶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서는 고속철도와 다른 교통수단간의 연계가 보다 효율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의 철도는 고작 3천여km로 해방 이후 늘어난 것이 없다. 전 세계가 에너지와 환경 위주의 정책으로 자동차 중심체계에서 철도중심으로 무게이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철도에 대한 기반이 너무나 빈약했다. 이제 교통망과 여행문화가 도로 중심에서 철도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이 고속철도를 타러 어떻게 광명역으로 가란 말인가? 서울역과 용산역은 왜 분산됐는가? 지금이라도 호남고속철도를 위해 만든다는 수서역을 강남으로 옮겨 여기에 중앙역을 만드는 것이 옳다. 연계 도로나 수단이 얼마나 잘 연계되느냐에 따라 이용객이 달라질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통됐지만, 아직 우리의 고속철도는 반쪽일 뿐이다. 아직 미완인 것이다. 서울과 부산 간에 고속으로 달리는 구간이 얼마나 되나? 서울 부근, 대전 부근, 대구에서 부산까지는 아직 공사가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서울 광명에는 수요를 과다예측한 탓으로 낭비적인 역이 버티고 있고, 대전과 대구에는 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결정된 바도 없다. 이 역을 공사하는데 지상이건 지하건 10년이 더 걸릴 것이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는 노선은 그동안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두 개의 세계적 규모의 장대터널이 필요한 난공사 구간이다. 또 있다. 갑자기 총선을 앞두고 결정된 오송역, 김천역, 울산역은 아직 위치조차 정해지지 않았다(오송역은 결정됐지만).아직 2단계 계획안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이 모든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도, 당초 목표인 2010년 완공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속철도 개통에 대한 감회와 기대가 크다. 20여년 전 처음으로 고속철도 연구를 맡아 세계은행 담당자와 고민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미국이 대륙간 철도를 개통하고, 또 일본이 신칸센을 만들고 나서 국운이 상승했던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국운도 고속철도와 함께 피어나리./전 교통개발연구원장 gyl5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