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약간 빈정대는 말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직업적으로 의심하는 버릇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들이 독설가라는 점도 설명이 필요없다. 비판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기자와 기자가 만나 서로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본 언론인들과의 만남은 다른 어떤 나라 동업자와의 만남보다 긴장감이 넘치고 흥미 만점이었다.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고 적당한 시차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반면교사로서 배울 점도 많다. 일본 쪽에서 나온 언론인들은 기쿠치 데쓰로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장, 요시다 후미히코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고이케 히로쓰구 일본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사지마 마사히코 요미우리신문 조사연구본부 연구원 등 4명이었다. 모두 경제담당이다. 기자에게는 기쿠치 논설위원장과 요시다 논설위원이 구면이다. 기쿠치 위원장은 사투리가 심하고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시커먼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지만 말 솜씨가 대단해 Y담이 아니고도 듣는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한국측에서는 기자 외에 몇 명의 다른 언론사 중견 기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정리하자마자 기쿠치 논설위원장으로부터 짓궂은 질문이 먼저 날아온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예상해 달라는 질문.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누구 한 분이 대표로 답하지 말고 한 분씩 돌아가면서 말해주시죠."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다. '한국 언론들의 대립상과 견해차를 나는 잘 알고 있다'는, 정곡을 찌르는 어법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 역시 한국 못지 않게, 더욱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경기침체와 독자층의 변화로 경영이 어려워진 것도 비슷하다. 기쿠치 위원장이 이번에는 일본 언론을 통렬히 자아비판한다. "요미우리를 한번 보세요. 정말 가관이에요. 헌법 개정 문제가 나오면 스스로가 헌법개정안 시안이라는 것을 턱하니 먼저 내놓고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식으로 바람을 잡아요. 핵 발전소 같은 것들도 여기에 짓자 저기에 짓자는 식입니다." 기쿠치 위원장의 평가로는 요미우리는 스스로 아젠다 과잉의 자기도취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어떤지 보세요. (이 전쟁의 시대에) 오로지 평화예요. 그러니 판매 부수가 떨어질 수밖에…." 다시 폭소가 터져나왔다. 일본의 동업자들을 옆에 앉혀놓고 쏟아내는 독설이었지만 악의는 없다. 그는 지금 일본 언론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실은 일본 여론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마이니치에 대한 독설도 빼놓지 않는다. "마이니치는 한마디로 정신을 못 차려요. 남들 눈치 보느라 우왕좌왕…. 뭘 하자는 것인지…." 또다시 폭소가 터져나왔다. "결국 독자 늘리기 위해 비누나 돌리고…. 남들이 돌리니까 우리도 돌려야 하고…." 기쿠치 위원장의 말이 단락을 지을 때마다 폭소는 연이어 터져나왔다. 한국 언론과는 실로 동병상련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농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노령화가 소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사회구조 개혁은 두 나라에서 어떤 경과를 밟아 나갈지, 일본의 농업과 한국의 농업은 어떤 전환기를 맞을지, 일본 경제는 진정 회복되고 있는지, 신문시장은 또 언제쯤 위기를 벗어날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들이 이어졌다. 대립하는 여론, 양분된 국민들에 대한 고민들도 양국 언론이 다를 바가 없었다. 기쿠치 위원장의 마지막 자기 고백이 걸작이다. "언제 위기 아닌 적이 있었나요. 제가 처음 기자를 시작할 때부터 위기였고 지금도 위기 아닙니까…."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정규재 < 부국장 jk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