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던가. '장(醬)은 모든 맛의 으뜸'(증보산림경제)이라고 했거니와 한국음식 맛은 실제 장맛에 달렸다. 칼칼한 된장찌개,시원한 미역국,얼큰한 참치찌개,상큼한 봄나물까지.뿐이랴.장만 맛있으면 반찬 걱정도 줄어든다. 고추장만 있어도 물에 밥을 말아 풋고추를 찍어 먹거나 열무김치 넣고 비벼 먹으면 되니까. 선인들은 장맛이 음식 외에 집안의 길흉에도 관계된다고 여겨 장맛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장이 묽어진다고 수흔일(큰달의 1ㆍ7ㆍ10,작은달의 3ㆍ7ㆍ12ㆍ26일)을 피해 담고(규합총서),담기 전 장독이 깨끗한지 연기를 내보고,소금은 간수가 빠진 걸 쓰고,물도 맛있는 걸 골라 끓여 소금을 넣고 식혀 체에 받쳐 썼다. 담근 뒤엔 귀신이 근접할 수 없도록 금줄을 치고 붉은 고추와 숯을 넣고 버선본을 오려 장독에 거꾸로 붙였다. 또 새벽이면 뚜껑을 열어 맑은 공기를 쏘이는 동시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게 하고 매일 깨끗한 물로 장독을 닦았다. 엄선한 재료에 맑은 자연의 힘,정성을 곁들여 장을 빚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지고 대부분 시판되는 간장이나 고추장을 사다 먹는다. 지난해 장류시장 규모는 5천4백억원.올해엔 6천억원을 넘어서리라는 전망이다. 사다 먹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나은 걸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한 업체가 장맛 증진을 위해 발효 및 숙성실에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소식이다. 비발디의 '봄'같은 경쾌하고 밝은 클래식과 부드러운 팝을 들려준다는 건데 이렇게 하면 음악의 진동이 효모 활동을 증진시켜 장맛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음악이 동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많다. 닭이나 젖소에 음악을 들려주면 산란율과 우유 질이 높아지고,오이같은 채소도 오전중 동요풍 음악에 새소리와 물ㆍ바람소리 등을 조화시킨 '그린음악'을 틀어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고추장은 모르되 간장과 된장은 시판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집에서 담그는 것만 못하다. 너무 짜거나 싱거운가 하면 무엇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떨어진다. 음악 속에 발효ㆍ숙성되는 장이 과연 어느 정도의 맛을 낼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