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가 달라졌다.


한층 젊어졌다.


클래식의 대명사로 통하던 의류회사가 어느새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패션브랜드로 변신했다.


그렇다고 가볍거나 품위 없어 보이는 건 절대 아니다.


개버딘(Gabardine)이 상징하는 고품질주의,클래식 체크의 품격,트렌치 코트가 대변하는 전통과 실용주의는 여전히 브랜드 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최근의 버버리를 '뉴 클래식 버버리'라고 부른다.


브랜드 창시자인 토머스 버버리의 직업은 포목상.1856년 영국 햄프셔 지방의 윈체스터 거리에 포목점을 연 그는 농부나 목동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개버딘'이라는 혁신적인 옷감 개발에 성공한다.


개버딘의 특징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뿐 아니라 방수·방풍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유독 비가 잦고 습기가 많은 영국 기후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소재다.


1891년 토머스 버버리는 런던 헤이마켓에 최초의 매장을 열었으며 같은 시기 버버리 개버딘 레인코트를 선보였다.


버버리 비옷은 군인 운동선수 여행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당시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도 '열혈 팬' 중 한 명.그는 버버리 개버딘 코트를 입을 때마다 "내 버버리를 가져 오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이 말이 널리 퍼져 오늘날 버버리라는 단어가 아이템을 지칭하는 패션용어로 쓰이게 됐다.


1901년 버버리는 영국 장교들을 위한 유니폼을 디자인한다.


기존 레인코트에 군인을 위한 몇 가지 디자인을 더한 제품이 바로 참호(trench)에서 입는 옷이란 뜻의 트렌치 코트(Trench Coat)다.


버버리의 기병·기사 로고도 이때 개발됐다.


벨트에는 수류탄을 달 수 있도록 'D형 고리'를 부착하고 장총을 사용할 때 개머리판이 닿아 생길 수 있는 원단마모를 줄일 수 있도록 오른쪽 가슴에 덧단을 대는 등 실용성이 돋보이는 트렌치 코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반화 되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얻었다.


레드 카멜 블랙 화이트 등 선의 조화가 우리의 눈에도 익숙한 버버리 체크는 1924년 트렌치 코트 안감으로 쓰이면서 첫 선을 보였다.


1997년 버버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 포춘지가 최고의 리테일러로 선정한 미국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전 사장 로즈 마리 브라보가 버버리에 조인한 것.그는 디자인 분야에서 젊은 인재들을 과감히 기용하고 유통구조를 재정립하는 등 브랜드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영국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1971년생)는 2001년 5월 구치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에서 자리를 옮긴 후 지금까지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그는 전임 디자이너 로베르토 메니체티의 뒤를 이어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prorsum은 전진을 뜻하는 라틴어.전통적인 스타일보다는 패셔너블하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라인)을 지휘하고 있다.


버버리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현대적이고 신선한 이미지를 더해주는 것이 그와 프로섬 라인의 임무다.


버버리는 현재 옥스퍼드 사전에 수록돼 있다.


또 10년마다 갱신되는 왕실의 인가와 함께 영국 지정 상인(Royal Warrantly)으로서의 역사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설현정 패션전문기자 sol@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