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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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단편 '붉은 산'(1933년)에서 '삵'이라고 불리던 망나니 정익호는 소작농 송첨지를 죽인 만주인 지주를 처치하고 돌아온 뒤 "붉은 산과 흰 옷이 보고 싶다"며 숨을 거둔다.
정익호가 고향의 모습으로 기억한 '벌건 황토빛 산'은 1960년대까지 이땅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일제의 수탈 끝에 6·25가 이어지면서 어디나 황폐한 민둥산 투성이였던 탓이다.
70년대 초만 해도 벌거숭이나 다름없던 산들은 73∼87년의 대대적인 치산녹화사업에 이은 꾸준한 조림을 통해 푸르게 변했다.
산불은 그러나 오랜 시간 애써 가꾼 숲을 하루아침에 폐허로 만든다.
96년 고성 산불은 남산 면적의 13배,2000년 동해안 산불은 80배에 달하는 산림을 파괴했다고 하거니와 몇해 전 불이 난 충남 홍성군 수암산만 해도 검게 그을린 바위와 나무등걸만 남아 울창했던 숲의 흔적은 찾아볼 길 없다.
제대로 된 숲은 최소 50년은 가꿔야 한다는 마당에 우리는 매년 여의도 면적의 20배 면적을 산불로 잃는다.
국내 산불은 71%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봄철에 일어나는데 특히 한식이 겹친 식목일 연휴에만 연간 건수의 11% 정도가 발생한다는 통계다.
때문에 '산림 공무원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장 싫고 산불 위험이 줄어드는 5월 중순에 피는 아카시아를 제일 좋아한다'는 얘기도 있다.
산불은 숲만 없애는 게 아니다.
토양이 푸석푸석해져 작은 비에도 산사태가 나는가 하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흙먼지가 날리고 잿물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어류 양식을 망친다.
산불의 원인은 성묘객 실화,입산자 실화,논밭 소각,담뱃불 실화 순이라고 한다.
올해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부는데다 '짝수해와 선거해에 산불이 잦다'는 징크스도 있고 4월이 음력 윤달이어서 이장이나 묘지 수리도 많아 산불 발생 개연성이 그만큼 높다고 얘기한다.
산불은 일단 발생하면 끄기 어렵다.
마른 잎이 쌓인 곳에 담뱃불이 떨어지면 10초 안에 발화하는데다 숲이 울창할수록 빨리 번진다는 까닭이다.
동해안 산불 이후 정부에선 진화체계를 정비하고 초대형 진화 헬기를 도입하는 등 예방과 진화에 만전을 기한다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개인의 각별한 주의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