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작기계 수주잔액이 4천억원을 돌파하는 등 공작기계 업계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수주 물량의 상당 부분이 국내 신규 투자용이 아닌 해외 현지공장 투입용 및 공장자동화용으로 나타나 '산업 공동화'와 '고용 없는 성장'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5일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50여개 공작기계업계의 수주잔액은 지난 2월말 현재 4천1백6억원으로 나타났다. 월간 수주잔액이 4천억원을 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업계 전체적으로 볼 때 평균 4개월 어치의 일감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업계의 평균가동률도 지난 1,2월 연속 85.6%를 기록, 사상 최고의 호황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작기계협회 관계자는 "최근 내수부문의 투자 형태는 과거와는 달리 생산성 제고 차원의 자동화 투자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경기선행지표인 공작기계 수주의 호조로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신규 투자가 자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내 공작기계 선도기업인 대우종합기계는 최근 S사에 대규모 라인자동화를 위한 설비를 납품했으며 두산메카텍도 자동차부품 업체인 D사와 대규모 자동화라인 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자동선반 전문업체인 한화기계도 예년의 두 배 가까운 수주를 따내 상반기 일감을 확보했으나 자동화 설비가 대부분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NC(수치제어) 선반이나 머시닝센터 등 자동화 설비들이 1∼2개 단위가 아니라 1개 라인을 통째로 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매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기업들이 임금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설비투자도 늘어나 산업공동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내 업체에 판매된 공작기계의 20% 가량은 다시 중국 등 해외법인으로 실려가 현지 설비 구축에 쓰이는 것으로 공작기계협회는 파악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S사는 최근 자동화 프레스 설비를 대량 구매했는데 이를 전량 중국으로 옮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자동차의 협력업체인 이 회사는 중국시장 동반 진출을 위해 현지 투자에 나섰다고 밝혔다. 공작기계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내수 판매물량의 일정부분은 해외로 실려나가고 있다"며 "최근 인천 남동공단에 소재한 많은 기계업체들이 중국으로 이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