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월부터 매주 화·목요일에 게재해 온 특별기획기사 '건설,1등산업으로 키우자'가 끝을 맺습니다. 국내 건설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위상이 크게 흔들리더니 최근에는 부동산 투기의 멍에까지 짊어지며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호·규제 중심의 후진적 건설정책으로 건설산업은 점점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달러박스'로 불리며 산업 근대화에 필요한 달러를 벌어들이던 해외건설의 경쟁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동과 동남아에서 국위를 선양했던 '건설코리아의 영광'도 이젠 전설로 남았습니다. 이번 특별기획기사에서는 이 같은 국내 건설산업의 현실을 짚어보고,건설산업의 중요성과 미래 비전,선진국의 신건설 정책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봤습니다. 아울러 건설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대책도 제시했습니다. 특별기획기사 시리즈를 마치며 각계의 건설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국내 건설산업의 분야별 문제점과 과제 등을 최종 정리했습니다. [ 참석자 ] △한만희 △김건호 △이지송 △김수삼 △김종훈 △최병선 △사회=김상철 건설부동산부 부장 ............................................................................. ▲사회=먼저 한국 건설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진단과 함께 선진화를 위한 방안 및 과제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수삼 대한토목학회 회장=한국의 건설산업은 중대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건설산업의 위기의식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도 건설산업이 첨단 디지털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경고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 미국 등 선진국들은 지난 90년대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 지속적인 신기술 및 신자재 개발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이처럼 과감한 혁신정책을 펼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정부와 업계 모두 아직은 건설산업의 선진화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그리고 지금을 위기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국내에는 건설업계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비리가 많은 업계로 보는 거죠.그러나 이는 건설산업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진국 건설업계에도 우리와 비슷한 수주 관행이 존재합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정도가 심한 경우도 많습니다. 국내 건설산업을 지나치게 부정적·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만희 건교부 건설경제심의관=건설업체간 공정경쟁질서가 확립되지 않아 기술력과 재무구조가 우수한 건설업체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대외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건설업계 내부에서부터 공정경쟁질서 정착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운동이 전개돼야 합니다.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건설산업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건설산업을 사양산업이나 굴뚝산업쯤으로 생각하는데 선진화를 위한 열정과 에너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건설산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발전시켜야 할 미래비전 사업이란 인식이 확고해야 합니다. ▲사회=산업의 토양이 되는 정책과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히 입찰제도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요. ▲김건호 건설비전포럼 대표=건설정책의 전체 컨셉트를 선진국처럼 품질·편리성·쾌적성·수명 연장 등 인간중심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공공공사의 입찰제도도 시공업체들의 기술경쟁 유도를 최우선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규제의 과감한 철폐가 필요합니다. 미국처럼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 NT(나노기술) 등 첨단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신기술·신자재 개발체계 구축도 시급합니다. ▲최병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일반 건설업체와 전문 건설업체간 겸업을 금지하고 있으며 영업범위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업체간 불필요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일부 업체는 계열사 등 별도 법인을 만들어 사실상 겸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겸업제한 규정이 시장에서는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업역간 진입장벽을 없애고 업체들로 하여금 능력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영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만희=일반·전문 등을 법률에서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업체들이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게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현행 규정을 시장 여건과 변화 속도에 맞게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최병선=단순 가격경쟁방식으로 운영돼 '로또식 입찰'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최저가 입찰방식을 선진국 입찰방식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PQ(사전자격심사) 심사방식을 실적과 기술력 중심으로 엄격히 평가하고 공기 단축 등 기술적 평가 요소가 가미된 평가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민간업체의 창의력과 치열한 기술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턴키 입찰이나 대안입찰 방식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건호=정부의 공공공사를 독점적으로 위임받아 발주하고 있는 조달청 중심의 '중앙발주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선진국처럼 각 부처와 산하기관,자치단체 등이 자체 권한과 책임하에 발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현행 중앙발주제도는 공공기관의 공공시설물에 대한 책임의식과 관리능력을 떨어뜨려 결국 국가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만희=최저가 낙찰제의 단점(덤핑 수주)을 보완하기 위해 저가심의제를 도입했지만 낙찰가가 예정가의 50%에도 못 미치는 덤핑 낙찰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저가낙찰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해외 시장에서 선진국과 중국 등 후발주자의 틈새에 끼인 형국인데 '건설 코리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들이 있겠습니까. ▲이지송=건설산업은 기본적으로 수주산업입니다. 공사를 많이 따내는 게 최고의 선이죠.따라서 업체들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사활을 건 수주전을 펼치는 건설업체에 대해 도덕성이 어떻느니,투명성이 어떻느니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딴죽은 걸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실제로 선진국 건설업체들은 한 건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베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해외 건설의 경쟁력은 곧 수주능력입니다. 업종의 특성을 이해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종훈=과거처럼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한 '몸으로 때우기식' 해외시장 개척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건설과정의 총체적 기술력 확보를 통한 '건설관리 능력'을 갖춰야 해외시장 진출이 가능합니다. 시공기술 위주에서 탈피,설계·엔지니어링·파이낸싱 및 위험관리 능력 등 총체적 사업관리 능력 개발이 필수입니다. 건설업체들도 이젠 기술 투자를 늘리고 전문기술인 확보에 주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김수삼=기술개발,친환경 개발체계 정착,건설금융 활성화 등이 이뤄진다면 지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 건설산업의 선진화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처럼 정부와 업계 학계 등이 참여하는 기획단의 설치가 절실합니다. 가칭 '건설산업 선진화 추진단'의 설치를 적극 검토해봐야 할 때입니다. 정리=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