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조성부지 안에 있는 묘지를 조속히 이전토록 하라." 경기도가 지난해 10월 LG필립스LCD사로부터 파주에 1백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후 50만평 규모의 공단을 조기에 조성하기 위해 발족한 '분묘이전 대책반'에 내린 특명이다. 공단부지에 포함돼 있는 야산에는 모두 3백76기의 유ㆍ무연 분묘가 산재해 있었다. △개인묘 1백61기 △종중묘 1백82기 △무연고묘 13기 등이었다. 20명으로 구성된 대책반은 분묘에 대한 기본조사 목록에 따라 개인별로 5∼10기의 묘지를 맡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고자 확인을 위해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공단이 위치한 월롱면 주민들은 '분묘이장 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묘지 이장을 승낙하는 사람을 '왕따'시키겠다는 등 완강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대책반은 처음에는 묘지 연고자와 면담조차 할 수 없었다. 조상 공경에 대한 우리 전통을 감안해 대책반은 행정절차를 통한 정공법보다 전화 및 방문을 통한 읍소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친구나 인척을 동원한 간접 접근과 설득도 병행했다. 그러나 설득작업이 만만할리 없었다. "선산 파가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 대대손손 내려왔는데 무슨 소리냐"는 묘지 주인들의 반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파주시청 백운용 주사). 대책반이 대안을 제시해 주민설득에 성공하기도 했다. "묘를 건드리면 집안이 망한다"며 이장에 반대한 주민을 제사를 지낸 후 이장을 하면 자손들에게 아무런 해가 없다고 설득해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다(파주시청 이용재 계장). 개인 묘지는 수차례 찾아가 설득한 끝에 이장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문제는 종중 분묘였다. 경기지방공사 이효근 팀장은 "종중 분묘는 위토 등이 딸려 있어 대토지(다른 토지) 구입과 보상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종중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책반원들은 종갓집 제삿날 새벽에 방문하거나 종중회의 때마다 참석해 집안어른들께 큰절을 올리고 묘지 이전에 협조해 달라고 설득했다. 파주시청 김태회 과장(43)은 "종중 어르신들은 '오지마라'며 문전박대 받기 일쑤였다. 5개월여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종중에서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설득과정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분묘 이전을 허락 받았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10여일 걸리는 묘지이장 행정절차도 쉽지 만은 않았다. 파주시는 곧바로 행정실무협의를 구성, 하루만에 인ㆍ허가 업무를 모두 처리했다. 월롱면 사무소 이수호 계장(41)은 "일부 묘지의 경우 호적확인이 안돼 족보를 확인해서 집안내력 증빙 서류를 갖춰 일일이 인ㆍ허가를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대책반의 이같은 노력 끝에 현재 개장(묘를 옮기는 것) 신고율이 98%에 달하며 윤달인 이달 18일까지 모든 묘지이전이 끝나게 된다. 이에 따라 LG필립스LCD 파주공단은 통상 3년이나 걸리던 기본계획수립에서 실시계획 승인까지를 1년으로 단축시켜 '국내 최단기간 공단조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지난달 18일 착공식을 가졌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