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박찬호의 봄 .. 이재희 <외국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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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ee.lee@unilever.com
지난해 시즌 내내 두들겨 맞다가 도중하차한 박찬호는 이 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며칠 전 TV에서 본 그의 모습은 건강하고 더 사나이다웠다.
올해는 꼭 우리들의 우울함을 가시게 해 주면 좋겠다.
올해 나는 봄 얘기를 부쩍 많이 하는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별로 신통한 조화를 부리지도 못했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봄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나의 봄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4·19가 끝나던 그해 나는 중3이었다.
전교생이 34명인 시골 중학교에서 선생님 한분이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고,음악선생이 국어도 가르쳤다.
3년 내내 교과서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시골 중학교에서 어머니는 담임 선생님과 면담 후 부산의 일류 고등학교에 합격하면 도회지로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무턱대고 시험을 치렀고,꼴찌로 합격하면서 새로운 봄을 맞았다.
그당시 시골 학생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일류 고등학교에 합격했고,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배 합격자들도 잇따랐다.
이 때문에 내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가 김해에서 명문(?)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늘 야구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그동안 모교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한 것도 생각해 보면 그 아련한 봄 향기를 잊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의 모교는 야구에 관한 한 명문이다.
고교 야구사를 통틀어 우승과 준우승을 그렇게 많이 한 학교는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면 야구를 생각하고,나의 봄은 야구장에서부터 온다.
이 빛바랜 습관은 오늘도 계속 되는데,지난해 나의 부진은 순전히 박찬호의 부진때문이라고 생떼를 부려본다.
이글을 쓰면서 우리 회사의 봄은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해본다.
임직원들도 나처럼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하의 박찬호도 지난해 그 모양이었는데 우리같은 범부들이야…"라고 위안했으면 한다.
그래도 우리의 박찬호가 공 한번 던지는 데 5백만원쯤 되고 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룬 사나이임을 자신이 안다면 공던지기가 훨씬 쉽지 않겠나 싶다.
박찬호의 화창한 봄날을 기다리며,월급도 쥐꼬리 만큼 올려주고 보너스도 주지 못했던 임직원들에게도 어서 또 다른 봄날이 왔으면 한다.
박찬호의 힘찬 재기를 기대하며 그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화려한 봄날이 다시 시작되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