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대우종합기계 매각에 투기성 펀드의 단독입찰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하는 등 구조조정기업 처리를 놓고 일대 방향 전환에 나섰다. 외환위기 이후 굵직한 은행과 제조업체들중 상당수가 해당 분야 사업 경험이 없는 해외 투기펀드들에 넘어가면서 불거졌던 '외자(外資) 제일주의 무용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채권단의 자율적 결정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각종 산업 연관 효과와 고용창출 산업전략 등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의 의지도 반영된 것이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 한계에 부닥친 '금융 우선 논리' 채권단이 대우종합기계 등에 재무적 투자자(펀드)의 단독 입찰을 금지하기로 한 1차적 이유는 회사의 특수한 사업구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건설기계, 산업차량, 엔진, 공작기계, 방산 부문 등으로 나눠져 있다. 한 마디로 분할하기 쉬운 구조다. 따라서 투기성 펀드가 인수할 경우 투자금을 조기 회수하기 위해 사업 부문을 잘라내 매각할 가능성이 높고, 자칫 사업 부문 간 시너지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 고용 창출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할 때 제조업을 영위하는 전략적 투자자들이 인수해야 회사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협력업체 육성과 고용의 지속적 보장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결국 '금융논리'에 집착한 그간의 외자유치 구조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채권단이 노조와 개인 참여자인 박병엽 팬택&큐리텔 부회장의 단독 응찰에 부정적인 것도 이같은 대기업을 이끌어갈 자금과 경영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방산 부문은 뉴브리지가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실사 기회라도 줄 경우 국가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을 고려, 제한입찰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대우조선 대우인터내셔널 등도 재검토키로 채권단은 당초 대우조선과 대우인터내셔널도 매각을 서두를 방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외국계 펀드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가 제기된 이후 매각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을 퍼부어 살려 놓은 기업을 서둘러 내다팔기보다는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우인터내셔널도 제한입찰 방식으로 매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시장 구석구석에 깔아 놓은 대우인터내셔널의 네트워크를 국내 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국내 업체만을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채권단 내에서 수출 네트워크가 없는 중소기업들이 연합해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우조선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춘 회사를 돈만 많이 받고 무작정 내다팔 수는 없다는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 주목받는 산업정책 방향 정갑영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을 매각할 때는 국가 경제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 산업의 특성 등을 고려해 매수자를 결정해야 하므로 채권단의 최근 움직임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정부와 채권단의 원칙 없는 외자유치 정책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빚었던 만큼 향후 외국 자본의 성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채권단의 펀드 단독 응찰 금지는 그 동안 학계와 업계가 제기해 왔던 '구조조정 기업 매각시 금융논리 외에 산업정책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도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이 구조조정기업을 인수하려 할 때는 과거사까지 철저히 검증하면서 외국 자본은 전혀 검증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만시지탄(晩時之嘆)'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