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3.1%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제 동향도 일부 수출업종이 호황을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수 부문은 끝없는 부진의 나락에 빠져 있다. "소주도 돈 없어 못 마셔.내수 불황 끝 안보인다"라는 한 일간지 기사의 제목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정부가 이런 내수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와 가전의 특소세를 20∼30% 인하하는 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있는 각 정당은 총선 이슈로 경제문제를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당 지지도와 경제적 성과가 마치 상관관계가 작은 것으로 보일 정도다. 선진국의 경우 성장,고용,인플레이션,국제수지,소득분배 등 거시경제 지표가 정당 지지율이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열거한 거시 지표 중 국제수지만 2월의 조업일수 증가로 호조를 보이고 있을 뿐 성장,고용,소득분배 측면에서의 성과는 최악의 수준이다. 즉 경제파탄이 위험수위를 넘었는 데도 여야 모두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약 4백만명,준신용불량자 약 4백만명에 대한 정책대안도 시급한 과제다. 정치권은 이들 문제가 경제적 차원을 넘어 가정파탄과 각종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이어질 때의 심각성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표심만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특히 이들 8백만명과 가족이 땀흘려 일하려 하지 않고 가진 자에 대한 혐오 등 자본주의의 근간을 외면하고 감성에 치우쳐 투표한다면 '부메랑 효과'에 의해 빈부격차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경제적 성과는 이전 정권에 비해 소비자물가와 실업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따라 고통지수(misery index)와 성장률에서 실업률과 소비자물가 인상률을 뺀 경제성과지수(economic performance index)로 측정할 수 있다. 전자는 낮을수록 후자는 높을수록 경제 운영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4분기 성장률은 6.8%,소비자물가 인상률은 3.3%,실업률은 2.9%였다. 2003년엔 성장률이 3.1%,소비자물가 인상률이 3.6%,실업률이 3.4%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2003년의 고통지수는 6.2%포인트에서 7.0%포인트로 높아졌고,경제성과지수는 0.6%포인트에서 마이너스 3.9%포인트로 크게 낮아졌다. 전반적으로 고통지수가 높아졌고 경제성과지수는 크게 후퇴한 셈이다. 경제가 어렵고 서민생활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번 총선에서는 탄핵정국에 대한 심판,지역구조 타파,거대 여당 견제론과 안정의석 확보,60·70대 폄훼 논쟁,총선 후 분당 발언 등이 주요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 이슈는 실종됐다. 국민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선거를 해야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우리의 선거문화는 경제적 성과보다는 경제외적 요인에서 누가 더 잘못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 결과가 경제외적 요인,그리고 가점주의(加點主義)보다는 벌점주의(罰點主義)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의 함정에 걸린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총선을 앞두고 경제문제가 지금처럼 외면당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요원하다. 지금이라도 각 당이 경제정책의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로써 국민의 심판을 받는 선진국형 선거 풍토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총선이 진행되면 결국 일자리 창출도 안되고 못사는 계층은 더욱 소외돼 소득분배 문제를 치유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IMF 당시를 거울 삼아 이렇게 한가하게 총선에 임해도 되는지를 헤아려 보는 지혜가 요청된다. 각 당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당리당략을 떠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빈부격차의 양극화를 근원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jwk5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