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자금 횡령해 해외로 도피한 은행 직원', '고객정보 유출해 돈벌이 나선 카드사 직원', '첨단기술 빼돌려 경쟁기업에 넘기는 산업스파이'. 최근 들어 기업 내부비리 사건이 빈발하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상시 구조조정이 일반화하면서 조직(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옅어지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기회만 닿으면 챙기고 보자'는 식으로 직장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된 때문이다.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피해금액도 커지고 있지만 해당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예방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은행 직원들이 4백억원을 빼돌려 중국 상하이로 잠적한 대형 내부비리 사건을 계기로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빈발하고 있는 내부 직원 부패의 실태를 점검해 본다. ◆ 회사 공금이 '쌈짓돈' 내부 비리의 대부분은 회사공금을 유용하거나 착복한 사례다. 최근 중견 건설업체 S사 부사장 홍모씨는 협력업체에 줄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회삿돈 75억원을 빼돌렸다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얼마 전 회삿돈 25억원을 빼내 주식으로 날린 J보험사 자산운용부 직원 사건이나 J은행 직원이 백화점 부가세 납부액 20억여원을 빼돌려 주식투자에 유용하다 적발된 사건 등은 하나같이 회삿돈을 개인돈처럼 유용한 내부비리 사건이다. 지난 1월 우체국 직원이 법인카드로 28억여원을 횡령해 경마와 도박 등에 탕진한 사건과 같은 달 주식투자로 빚을 진 모 은행 지점장이 은행돈 16억원을 빼돌렸다가 구속된 사건도 비슷한 사례들이다. ◆ 고객 신용정보 빼돌려 돈벌이 고객 신용정보 및 개인정보를 이용해 돈벌이를 시도하는 비리도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이런 사건은 직원 한 사람의 개인 비리에 그치지 않고 기업 전체의 신뢰도와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몸살을앓고 있다. 최근 카드사 모집인 이모씨(29)는 신용정보사 직원 김모씨(34)와 카드사 직원 윤모씨(32) 등과 짜고 신용카드 7백여장의 정보를 빼낸 뒤, 이 중 58명의 카드를 이용해 카드깡 방식으로 총 1억2천여만원을 빼돌리다 구속됐다. 최근에는 금융회사 직원들로부터 고객 신용정보를 빼돌린 뒤 이를 이용해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사이버 머니를 만들어 팔려던 주모씨 등 4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 가운데는 S캐피탈 강서출장소 상담사 이모씨와 K생명 강서영업소 보험설계사 오모씨 등 금융회사 직원들이 가담, 자신들이 관리하는 고객 9백27명의 신용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 첨단기술 노리는 산업스파이 산업스파이 문제도 심각하다. 작년 2월 한국알콜산업의 자회사 ㈜이엔에프 테크놀로지(이하 이엔에프) 직원 3명이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핵심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경기도 화성 D사 연구실에서 5∼8년 동안 근무하다 이엔에프로 옮기면서 거액의 스톡옵션과 높은 연봉을 조건으로 D사가 개발한 첨단 반도체 기술을 빼돌렸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S반도체 부사장이던 일본인 K씨도 경쟁업체로 옮기면서 회사의 핵심 기술인 백색 발광다이오드(LED) 기술 자료를 빼낸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국가정보원이 작년 말 조사한 산업스파이로 인한 예상 피해액은 총 14조원에 달한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