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고향 '취푸'] 하늘 닮은 모래길서 어진 삶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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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문득 뒤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떤 길을 얼마나 어떻게 헤쳐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옛 성현의 자취를 살피며 인생을 반추해 보면 어떨까.
세계 4대 성인중 한 사람인 공자(孔子)의 고향이자 중국 문화의 산실인 취푸(曲阜)로 가는 길은 평택 국제여객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6백명을 태울수 있는 황해페리가 평택항을 빠져 나온지 30분 남짓.
세상은 하늘과 바다뿐이다.
바다빛을 머금은 하늘이 수평선에서 뿌옇게 물을 만난다.
배꼬리에 길게 이어진 하얀 물거품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
한쪽은 그간 지나온 곳이며 다른 한쪽은 앞으로 가야할 곳.
왔던 길과 가야 할 길 사이에 하얀색 여유가 길게 펼쳐져 있다.
# 개발 꿈이 무르익는 르자오
여행자는 세상을 위에서 바라본다.
세상에 묻히면 미처 볼 수 없는 기쁨을 위에서 바라보고 즐기는 건 여행자의 특권이다.
보따리 장사들로 가득찬 배 안엔 온갖 즐거움이 숨어 있다.
엄마의 뒤를 놓칠세라 바짝 따라붙은 아이의 긴장됨.
반바지에 속옷 차림으로 이른 잠자리를 손보는 남자의 여유로움.
허리에 꿰찬 주머니를 풀고 하루의 셈을 따지고 있는 앳된 부부의 치열함.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는 여행자의 눈길이 그들에게 거슬렸나 보다.
중년의 부인이 '무슨 구경거리 났소' 하는 듯 노려본다.
어색한 눈길을 성급히 거두고 객실에 돌아와 누웠다.
적당한 진동과 웅장한 엔진음이 잠을 부른다.
평택에서 중국 르자오(日照)항까지 뱃길로 18시간.
한숨 자고 밥 먹고 구경하고 또 한숨 자니 곧 르자오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수 있다고 해서 이름도 르자오.
중국 서부지역의 최대 휴양도시인 르자오는 느긋함과 조급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차선이 분명치 않은 도로를 자전거와 자동차,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들이 뒤엉켜 유유히 흘러간다.
혼란과 질서가 교묘하게 결합한 중국 특유의 여유가 곳곳에서 배어난다.
르자오는 한창 개발 중이다.
일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3대 수입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역동성이 르자오에서도 그대로 묻어 나온다.
산둥성에서 생산되는 녹차의 70%가 르자오에서 나온다.
그만큼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길이가 60km가 넘는 서부지역 최대의 황금 백사장도 르자오에 있다.
# 동방 성인의 聖都, 취푸
산둥성 중남부에 위치한 취푸는 중국인의 조상인 황제(黃帝)와 도교와 더불어 중국사상의 양대기둥인 유교의 창시자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공자가 태어나고 생활하고 묻힌 3공(孔廟, 孔府, 孔林)은 9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조는 공자의 사상의 고스란히 담은 사당이다.
역대 중국 황제들이 이곳을 참배하러 올 때마다 하나씩 지었다는 9개의 전각을 지나면 휘황찬란한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을 앞에서 받치고 있는 10개의 기둥엔 호화로운 용이 휘둘러 새겨져 있다.
중국인에게 최고의 숫자는 9다.
최고의 숫자인 9를 넘어 기둥의 개수를 10개로 했을 만큼 공자에 대한 중국인의 존경심은 태산만큼 높다.
공조는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 태안의 대조(垈廟)와 함께 중국의 3대 건축물로 꼽히기도 한다.
'천하 제일의 장원'으로 불리는 공부는 공자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누각과 대청을 합치면 4백63칸이나 될만큼 웅대한 규모를 뽐낸다.
공림은 공자 일가의 가족 묘지로 무덤 수가 10만기를 넘는다.
호텔이건 식당이건 담배를 피우는 중국인들도 이곳에서만은 금연의 예의를 깍듯하게 지킨다.
태산만큼 크다면 엄청나게 큰 것이다.
하지만 실제 태산은 명성만큼 엄청난 산이 아니다.
해발 1천5백45m.
설악산보다 낮고 지리산에 비하면 초라할 만큼 작다.
태산이 태산이 된건 아마도 산둥성 주위가 낮은 구릉지대이기 때문인 듯하다.
평평한 땅에 볼록 솟아 있으니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높아 보였을 것이다.
태산이 태산이 된건 높이 때문이 아니다.
고대 중국 황제들은 자신의 위엄을 확인하기 위해 태산을 꼭 찾았을 만큼 태산은 높고 거대함의 상징이다.
태산은 7천여개의 계단 등반으로 유명하다.
산 입구의 일천문(壹天門)~중턱의 중천문(中天門)~정상의 남천문(南天門)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늘로 오르는 통로다.
7천개의 계단 등반을 하려면 족히 3시간은 넘게 잡아야 한다.
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으니까.
태산에 가면 여행객의 눈을 잡는 특이한 풍경을 볼수 있다.
바지랑대같은 장대를 어깨에 가로 걸치고 장대의 양끝에 쌀이나 음식물같은 봇짐을 매달고 7천개의 계단을 쉬엄쉬엄 오르는 사람.
차량이 올라갈수 없는 구간을 온몸으로 채워주는 짐꾼이다.
아무리 빨라도 3시간을 넘게 걸리는 계단길을 쌀 반가마니 정도는 됨직한 봇짐을 양쪽에 매달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그들에게 경외감까지 생긴다.
천운을 타고 난 사람만이 정상에서 구름바다를 볼수 있다고 한다.
장엄한 태산의 구름바다를 볼수 없었지만 이마를 스치는 바람.
뿌연 하늘.
그리고 지나온 세월을 아쉬워하지 않고 다가올 시간을 조급해 하지 않고 느릿하게 시간을 낚는 강태공의 후손들은 구름바다에 못지 않은 장엄함을 보여 주었다.
태산 위에 서 있으니 마음마저 태산을 닮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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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평택에서 중국 르자오를 왕복하는 황해페리는 1주일에 3번 운항한다.
평택항에서는 일요일 오후 7시, 수요일 오후 4시, 금요일 오후 6시에 출항하고, 중국 르자오항에서는 화요일 낮 12시, 목요일 오후 4시, 토요일 오후 5시에 평택항으로 출항한다.
평택항에서 르자오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18시간.
선실에 비누와 수건이 준비되어 있어 따로 세면도구를 챙길 필요는 없다.
르자오는 위도상 한국의 군산과 비슷하다.
요즘 르자오는 복사꽃이 반발해 있다.
시차는 한국과 1시간.
르자오항에서 공자의 고장인 취푸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취푸로 가기 전에 오연산을 먼저 들를 경우 오연산에서 취푸행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약간의 비포장도로를 지난다.
취푸에서 타이안(泰安)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
태산을 둘러보고 르자오까지 돌아오는 길은 차로 3시간 거리다.
타이안에서 르자오까지 오는 길엔 휴게소가 하나뿐이다.
자칫 휴게소를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낭패를 볼수 있으니 조심.
에버투어(02-3672-5100, www.evertour.net)는 르자오~취푸~타이안을 거치는 4박5일 상품과 5박6일 상품을 내놨다.
각각 28만9천원, 33만9천원.
산둥성 일대를 쭉 둘러보는 7박8일 상품은 48만9천원.
모두 황해페리를 이용한다.
취푸=이병철 기자 hea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