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체 에너지 수요의 96.9%(2003년 추정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형적인 해외 의존형 에너지 수급구조다.


이 때문에 국제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곧바로 경제상황 악화를 걱정하게 된다.


산업화에 막 접어든 30년 전이나 '21세기 동북아 경제중심'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을 내세운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고유가->고비용->저성장'의 악순환은 반드시 풀어야 할 해묵은 과제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 있다.



◆ 에너지가 전체 수입의 5분의 1


지금껏 이 숙제를 풀지 못하는 이면에는 다름 아닌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라는 고질병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국내 에너지 수입액은 원유 수입 2백30억8천만달러를 포함해 3백83억달러나 됐다.


전체 수입액(1천7백88억3천만달러)의 21.4%에 달하는 규모다.


국제 원유가격 상승으로 원유 수입액은 2002년 1백92억달러에서 지난해 2백30억달러로 38억달러(19.7%) 늘어났다.


전체 수입의 5분의 1 이상을 에너지를 사오는데 쓰고 있는 셈이다.


국제 유가는 이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1백만배럴 감산 단행 등 상승 요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배럴당 40달러선(서부텍사스중질유 기준)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가 5,6월에도 해소되지 않는다면 올해 원유 수입액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2백20억∼2백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에너지 과소비 선진국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구조의 실상은 에너지 관련 다른 통계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200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는 세계 25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3위 수준이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량(10위)과 석유소비량(6위), 석유 수입량(3위) 등은 이미 인구와 경제규모 순위를 크게 앞서 있다.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2001년 기준)도 4.114 TOE(석유환산t)로 일본(4.094) 영국(4.0)보다 많다.


1천달러의 GDP를 얻기 위해 투입하는 에너지 양을 나타내는 '에너지 원단위'(TOE/GDP 1천달러, 2001년 기준) 비교에서도 한국(0.305)은 미국(0.254)과 일본(0.092) 독일(0.130)보다 높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 비중 역시 한국은 26.3%로 미국(18.6%) 일본(20.4%) 독일(21.8%)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 에너지 쓴 만큼 부가가치 못내


이처럼 에너지 원단위가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브랜드 경쟁력 부족 등으로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뒤처지고 △석유화학ㆍ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비중이 높은 데도 원인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에너지를 물 쓰듯' 하는 풍조에도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대형 승용차와 가전제품 등의 수요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산업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1천5백㏄ 이상 중ㆍ대형급 승용차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85년 28.6%에서 2000년에는 42.5%로 높아졌다.


냉장고의 평균 용량은 같은 기간 1백95.7ℓ에서 4백8.6ℓ로, TV 크기는 14.9인치에서 23.5인치로 커졌다.


에너지 과소비 풍조는 이처럼 전력사용량 증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셈이다.



◆ 10% 절약=연간 38억달러


국민 1인당 연간 전력 사용량은 98년 4천1백67kwh에서 99년 4천5백72kwh, 2000년 5천57kwh로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수조원의 돈을 발전용 연료 수입과 발전소 건설 및 유지ㆍ보수에 쏟아부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측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는 4.5배나 급증해 경제규모 증가세를 앞질렀다"며 "이제부터라도 에너지 소비를 10% 줄여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경제 전반의 부담을 축소시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관리공단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 사용을 10% 줄이면 에너지 수입이 38억달러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