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냉전시대의 상징적 무대로 미국과 옛소련 스파이들간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졌던 오스트리아 수도 빈.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도시가 동유럽의 EU 편입으로 동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국적 기업들의 '전략본부'로 탈바꿈하고 있다. 빈은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까지 60km에 불과한 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도 차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빈이 동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국내기업들의 전략본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독일과 맞먹는 신시장의 탄생 삼성전자 구주총괄법인장들은 지난 7일 브라티슬라바로 총집결했다. 이날 구주총괄법인장 회의는 동유럽의 EU가입에 대비,마케팅 전략을 재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동유럽 법인 매출의 2% 이상을 브랜드 인지도 확충에,5% 이상을 마케팅 및 판촉비용에 쓰기로 결정했다. "신규로 EU에 가입하는 동유럽 10개국과 루마니아 불가리아까지 포함할 경우 중동구(中東歐)의 인구만 1억명에 육박합니다.독일과 맞먹는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는 셈입니다."(이상영 삼성전자 빈 법인장) 삼성전자는 이날 회의에서 판매법인을 세운 폴란드와 헝가리 등을 포함,올해 중동구에서만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2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통합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만 올해 2천만달러를 집행하고 국가별 NSC(내셔널 서비스 센터)를 설치키로 했다. LG전자도 지난해 10월 체코 프라하에 판매법인을 설립,헝가리와 폴란드에 이어 새로운 판매거점을 확보했다. 골든타임에 TV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 딕슨과 같은 서유럽 AV(오디오 비디오) 전문 유통채널과 제휴,공동마케팅을 펼치기로 하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 투자를 진행 중이다.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업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 1·4분기 동유럽지역 판매량이 9천1백82대로 작년 동기보다 1백62%나 늘었다. 체코에선 지난해 판매성장률이 현지 메이커인 스코다는 물론 르노 푸조 폭스바겐 등을 능가하며 1위에 올랐다. 대우 및 기아차 판매량과 합칠 경우 한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5%를 넘어선다. 기아차 서동식 CIS·구주판매총괄 전무는 "쏘렌토의 경우 대당 5만유로에 이르지만 재고 차량이 없어 6백여대의 주문을 받아놓고도 차량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고 푸념했다. ◆휴대폰 디지털TV 수출 20배 증가 한국 기업들의 동유럽 지역 수출도 쾌조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동유럽 생산기지화에 따른 원자재 및 반제품 수요는 물론 내수 활황에 따른 내구 소비재까지 전 품목에 걸쳐 이들 국가의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신(新) EU 4인방'의 경우 한국 제품의 수출이 지난해와 비교,절반 가량 증가하는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1∼2월 휴대폰 수출이 2천3백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배 이상 폭증했다. 폴란드도 최근 3∼4년간의 부진을 털고 올들어 40% 이상 증가하면서 수출회복 기조에 합세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 'EU가입 예비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수출 증가율도 1백%를 넘어서면서 수출시장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KOTRA의 정종태 빈 무역관장은 "내달부터 이들 지역의 수입관세가 인하될 예정이어서 승용차 등 고가 제품의 수출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오스트리아)=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