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의원 선거전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거여 견제론'과 `거야 부활 경계론'이었다. 많은 유권자들은 덩치 큰 여당출현을 견제하는 한나라당의 절절한 호소와, 거야부활을 경고하는 열린우리당의 절박한 논리 사이에서 막판까지 `방황'했을 법하다. 대통령제 하에서 여당이 의회권력까지 과점하면 국정이 독선에 흐르기 쉽다는 한나라당의 말이 일견 옳은 것 같기도 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계속돼온 소수정권에 의한 정국불안을 막기 위해선 과반 안정의석이 필요하다는 열린우리당의 논리도 그럴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 종반 부동층이 불어난 현상은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한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양당의 공방과 `엄살'은 "그렇다면 과연 차기 국회의 황금분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항간의 궁금증과 선택의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다. 황금분할이란 단순히 여야가 의석을 균형있고 보기좋게 나눠갖는 숫자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과 같은 국가 권력간 충돌, 헌법개정이 필요한 권력구조 개편 등 국가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이상적인 원내 의석분포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단원제인 한국 국회에서는 원내 다수 정파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의미가 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각 100-150석 사이의 의석을 갖고, 나머지 정당들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의석을 점유하는게 일단 황금분할에 근접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이를 테면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민주당 또는 민노당을 우군으로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무언가 독자적으로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의석분포를 예로 들 수 있다. 국회 일반 안건의 의결정족수가 재적 과반인 150명의 출석을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개 정당에 150석 이상을 밀어주는 것은 `전통적' 의미의 황금분할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전제에서다. 황금분할로 비유됐던 지난 88년 13대 총선결과는 이 점에 비추어 참고가 될 만하다. 당시 집권 민정당은 1백25석을 얻는데 그친 반면, 야당에서는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 등 164석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당시는 의회권력이 `정치의 시녀' 역할을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야당이 과반을 점한 일이 황금분할로 묘사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가지 정치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당으로 구성된 야당이 과반을 확보하는 현상을 반드시 황금분할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게 됐다. 시대마다 황금분할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이번 국회는 이념지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뀐다. 17대 국회는 과거 사실상 보수일색에서 보-혁으로 편대를 나누게 될 것이 확실시 된다. 정당의 이념적 색채만 고려한다면 황금분할은 보-혁의 양날개가 평형에 가까운 쪽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범개혁 세력으로 볼 수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보수진영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의석분포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도보수 성향의 민주당이 이념의 간극을 메우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면 어느정도 황금분할에 가까운 모양새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대 박찬욱(정치학) 교수는 "황금분할이라는 철칙은 없다"며 "제1당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이 과반수를 훨씬 상회하는 정도로 불균형하게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김수진(정외과) 교수도 "단순하게 황금분할이라는게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다"면서 "주어진 구조적 여건 속에서 정치행위자들이 어떤 행동양식과 내용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특정 정당의 의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 의석분포의 결론이 나든 다수의 전횡과 소수의 반대라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되풀이된다면 정당 의석수에 의한 외견상 황금분할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15일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면 솔로몬의 선택과도 같은 의석배분이 이뤄져 "이것이 바로 천심(天心)이라는 민심이 내린 황금분할이구나"고 무릎을 칠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