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지난해 금융감독원과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한은법을 의도대로 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은법 개정 성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지급결제제도 전반에 대한 감시업무를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온 것이었다. 중앙은행의 위상에 걸맞은 권한이라는 것이 당시 한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한은 전산망 오류는 과연 감시의 주체가 이 정도의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지난 2일 한은 전산망이 다운돼 1백조원에 이르는 금융거래가 5시간 동안 차질을 빚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은은 "단말기 소프트웨어와 중계 서버 소프트웨어 충돌이었기 때문에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길 때 작동하는 백업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와 관련, 박승 한은 총재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지시한지 열흘 만에 벌어진 13일 상황은 더 황당하다. 전산망 소프트웨어가 낙찰 금액과 낙찰해야 할 금액이 일치하자 이를 낙찰 완료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은은 이 상황을 '특이한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까지 수백억원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낙찰결과를 기다려야 했던 투자자들이 이런 정도로 납득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공식적인 해명 한마디 없이 언론에 노출되자 뒤늦게 '경쟁입찰 지연처리 경위'라는 달랑 한 장짜리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하고 끝낸 한은의 대처방식에서는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를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두번째 사고가 터진 지 하루가 지난 14일 오후, 우연히도 담당 국장은 해외출장중이었고 해당 국에서는 "담당 팀장 외에는 상황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김용준 경제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