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캠피온 감독의 에로틱 스릴러 "인더컷"은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빠져드는 여자의 불안과 욕망을 다룬 영화다. 일반 에로틱 스릴러처럼 "욕정과 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범죄행위 자체 보다는 남성과의 관계맺음에서 여성의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데 치중했다. 육체관계에 눈뜨면서 마음의 문을 연 여성을 그린 "피아노",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가는 여인을 묘사한 "여인의 초상" 등 캠피온 감독의 전작들처럼 일종의 페미니즘영화이다. 언어학교수 프레니(맥 라이언)의 눈에 비친 남성은 여성에게 욕망의 표적이자 공포의 시원(始源)이다. 남성은 육체의 쾌락과 정신적 안락감을 제공하지만 때로는 여성을 살해하는 짐승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연쇄살인사건'에 연루된 프레니와 주변 남성들의 캐릭터가 그렇다. 프레니의 전 애인(케빈 베이컨)은 스토커로 변해 그녀를 괴롭힌다. 현재의 애인 말로이 형사(마크 러팔로)는 연쇄살인범과 비슷한 문신을 갖고 있으며 유순한 흑인 제자도 어느날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아버지의 스케이트 날에 어머니의 다리가 잘리는 환상이 프레니에게 떠오르는 장면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피해의식을 잘 집약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가 남성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는 이유는 '남성 길들이기'란 여성의 본능 때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야만적인 남성을 문명의 세계로 인도해 두 사람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를 무장해제 시키고 쇠사슬로 결박했듯,프레니는 말로이의 손에 수갑을 채운 채 섹스한다. 여성의 매력으로 야수의 괴력을 정복한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승리의 쾌감은 오해로 인해 극단의 공포로 바뀐다. 여성이 남성을 신뢰하기까지 숱한 불신과 오해의 벽을 넘어야만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흑인의 속어를 연구하는 학자로 분한 맥 라이언은 평소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지만 정작 연인 앞에서 속옷도 벗지 못할 정도로 수줍어 하는 여성의 양면성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배경음악인 도리스 데이의 '케세라 세라' 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여성을 상기시킨다. 30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