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총선으로 사분오열됐던 국론을 하나로 추슬러 온 국민이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은행ㆍ증권ㆍ대기업 등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연구원장 등 각계 최고전문가 14명은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졌던 국론을 하나로 모아 청년 실업 투자 및 내수 활성화 기업 살리기 노사화합 성장잠재력 확충 등 산적해 있는 경제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확실성을 줄여라 경제 살리기의 첫번째 과제는 국내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에 끼여 있는 불확실성을 조속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은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정치권이 만들어냈지만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노선이 혼선을 보인 것도 일조했다"며 "총선이후 정부가 어떤 정책노선을 채택하고 유지할 것인지 분명히 밝히는 것이 불확실성을 없애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이후엔 통상정책에 대한 전략과 비전도 뚜렷하게 제시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이 향후 급진전될 것에 대비해 국내산업의 구조조정 방안 및 협상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해야 한다"며 "올해 말까지 끝내야 하는 쌀 재협상에서도 국내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농업구조조정의 기회를 포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총선과 탄핵으로 심화된 국민적 갈등의 골을 메우고 치유하는 일도 시급하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사회ㆍ경제적 갈등의 빈도를 줄여 국력의 낭비를 막아야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은 "총선 과정중에 빚어졌던 갈등의 골을 하루빨리 메울 수 있는 국민 통합의 정치가 펼쳐져야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ㆍ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면 '기업가 정신 위축→투자 축소→고용 감소→경제 전반의 체질 약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반도체 총괄)은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정 속에서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며 "예측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정부는 물론 정치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헌철 SK㈜ 사장도 "이번 선거가 국론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젠 기업 살리기 나서야 송대희 한국조세원장은 총선이후 주요 정책과제로 '기업들의 투자회복을 위한 환경 조성'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송 원장은 "대기업의 불공정한 내부거래 등을 통한 사업 확장은 지속적으로 규제하되 정당한 투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경유착의 유산으로 지적되는 과다한 조세감면 및 특혜는 철폐돼야 하지만 성장과 관련된 투자에는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움츠리고 있는 기업인들이 큰 그림하에 왕성한 투자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고 불안감을 덜어줘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 공장을 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을 정치권에 주문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도 "17대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적극적인 대화 및 협의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협력의 정치'를 펼쳐 주기 바란다"며 "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선 국내 사회 안정과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관련법률 개선 및 제정,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세제 정비 등 다양한 정책 등을 통해 침체된 국내경기 활성화 및 국내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정부가 분명한 정책의지를 보여 주는 것도 긴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송 원장은 "현재와 같이 불안정한 노사환경이 지속될 경우 외국인 투자뿐만 아니라 국내기업의 재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경기양극화ㆍ실업 우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한국 경제의 당면 문제로 내수와 수출사이에 심화되고 있는 '경기 양극화'를 꼽았다. 그는 "경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중소기업이 품질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15세 이상 인구의 17%에 달하는 신용불량자에게 어떻게든 일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고서는 내수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홍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도 "국내 경제가 불균형한 성장국면을 지속하고 있다"며 "총선 이후에는 정부가 약속한 대로 '내수 부양'에 힘써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기권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미국처럼 과감한 감세정책을 고려해 봐야 할 시점이 됐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돼야 고용부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송 대신증권 사장은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 등 투기자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자본시장을 통해 생산 현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