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數의 정치' 경계해야..김영규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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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삼성전자 주가는 얼마일까.
이 회사 주가는 지난주 한때 60만원선을 돌파,벌써부터 경계 매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4년 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될 것으로 점치는 투자자들이 많다.
10여년 전만 해도 삼류에 불과했던 삼성전자가 올해는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익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으로 급성장해서다.
자사가 만든 1등 제품을 스스로 깨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IT 거품 시절의 '황제주'와는 다르다는 믿음을 투자자들에게 강하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4년 후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주가는.열린우리당은 지난주 끝난 '4·15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16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을 만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정당 인기도를 보면 삼성전자 못지 않은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그러나 다소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나 삼성전자와는 달리 여당의 미래에 확신을 갖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정치에 관한 한 믿음보다 불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실제 거대 정당이 불과 몇년 후 군소정당으로 전락,당명까지 바꿔야 했던 게 우리의 정치사다. 국민들은 비생산적 밀어붙이기식 '힘의 정치'에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표심을 통해 정당간 '힘의 균형'을 유지해 주었다. 지난 90년 민정 민주 공화 등 3당이 합당해 2백석이 넘는 거대 여당인 민자당을 인위적으로 만들자 92년 14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민자당의 의석수를 과반에 1석 부족한 1백49석으로 축소시켜 놓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씨가 집권을 위해 걸맞지 않은 'DJP'연합을 하자 2년 후인 2000년 총선에선 야당인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4·15 총선' 결과도 그 흐름의 일각일 뿐이다.
거대 야당이 5분의 1 의석에 불과한 여당을 힘의 논리로 몰아붙이며 대통령을 탄핵소추하자 국민들은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를 역으로 심판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보다는 야당의 오만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짙었다는 게 일반적 관전평이다.
국민들이 여당에 과반보다 단 2석을 더 얹어준 것도 어느 당에도 절대적 힘을 주기 않겠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을 2등으로 밀어냈지만 견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일정한 지분을 보장해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수의 논리를 앞세워 포퓰리즘식 개혁을 밀어붙이고,국민들을 계도하려 든다면 엄청난 경계 매물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총선은 정부 여당에 산적한 과제를 남긴 채 '올인'식 투쟁으로 끝났다. 이제 탄핵정국을 풀어나가야 하고,세대간 이념간 갈등도 해소해야 한다. 지역감정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은 곧 아시아를 삼킬 태세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고 내수는 바닥만 다질 뿐 별다른 상승 모멘텀을 못찾고 있다.
기업들은 민노당의 약진에 불안해 하고 있다.
다행히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총선 다음날인 16일 '기업의 기'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정책이 좌회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공언했다.
여도 야도 경제 살리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약이 구호로 끝날 경우 국민들은 표심을 통해 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 국민을 리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업활동을 옥죄기보다는 삼성전자의 생존전략을 벤치마킹하는 겸허도 가져야 한다.
국민들은 힘의 투쟁보다 파이를 키워 많은 이익을 내는 생산적 정치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