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은 여당의 과반수 의석과 야당의 충분한 견제의석 확보,그리고 민노당의 제3당 진출로 끝났다. 그것은 이성적인 국민이 정계를 황금분할한 지혜의 산물이다. 이념구도로는 개혁성 보수,냉전수구성 보수,그리고 급진의 삼각체제를 구축했다.권력은 40년간 고착된 냉전권위주의적 보수에서 개혁보수와 진보 쪽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그 결과 참여,감성,그리고 잠재력이 강한 여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해 권력과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게 됐다. 정부 여당은 이제 수구세력에 발목잡혀 통치혼란을 야기하거나 공약한 개혁정책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이미지 정치로 그칠 수 없게 됐다. 선거에는 탁월하나 통치에 한계를 보였던 지난 1년을 반복할 수도,그 비난에 대한 항변도 할 수 없게 됐다. 전투적 리더십으로는 책임을 다할 수 없고 감성적 인기로는 나라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치는 다음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정치는 탄풍 노풍 박풍 추풍 등 감성에 호소했으나 국민은 수구에서 진보로,독주에서 견제와 균형으로,감성에서 이성으로 응답했다. 사실 감성은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열정성을 지녀 대중지지력 흡수성이 크다. 반면에 이성은 자극에 대해 사실과 예상, 그리고 가치판단에 따르는 능동성과 역동성을 지닌다. 정부 여당이 감성적 리더십에 머물고 국회가 민생과 정책을 외면한 채 정략과 권력투쟁에 매달리면 국민이성은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한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당선의 환희보다 할 일과 몸가짐에 열정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둘째, 이번에는 돈 흑색 매터도 선거 등 네거티브 선거 악습은 수용할 만한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에 기이하게도 경기 회복지연,물가불안,기업의 해외탈출,많은 신용불량자와 실업자,그리고 격차심화 등 절박한 국정과제도 선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당이 압승함으로써 월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은 우리사회에 불확실성이 감소된 것으로 평가했다. 선거 후 주식 등의 시장안정성이 그 예다.경제를 비롯한 나라 전체에 개혁정책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본 것이다.이제 정부여당은 지난 1년간 표류했던 개혁정책에 추동력을 발휘해야 한다. 결코 철학과 경륜부족으로 '실을 풀려다가 더욱 헝클어지게 했던' 어리석음을 반복해선 안된다. 개혁추동력을 가속해 감성정치에 능숙한 정권이란 오명을 벗어야 한다. 셋째, 정치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선 주권자인 국민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처럼 탄풍 노풍 등 국민 분열성 정서호소는 세대간 지지집단간 갈등을 고착시키기 쉽다. 국회와 정부는 따분하고 지루하더라도 이들 간의 대타협을 모색하고 선거에서 진 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데 소홀해선 안된다. 어떤 정권이라도 일단 집권하면 지지정당과 지지집단만의 권력이 아니고 모든 국민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넷째, 갈등구조의 대통합 과정은 공화정의 핵심가치이며 의사결정 과정의 표상이다. 갈등계층간 이견조정과 화합절차의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국민이 바라는 것(이성)이 무엇인가를 인식한 후 참여정부답게 공개적 토론과정을 거쳐 이념과 지향성을 달리하는 집단의 이해와 양보를 얻는 인내심과 절차의 중요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결정된 이념과 정책을 차질없이 시행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고,예측가능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40여년 만의 완전한 권력이동이 "유권자는 선거당일 하루만 주인이고 그 이튿날부터 머슴으로 전락한다"는 정치학자 J 루소의 경고가 옳았다고 탄식하는 정치 단상을 남겨선 안된다. 또 다시 정치혐오 및 좌절로 이어져서도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국민이성이 참여와 토론에 반영되고 여과없이 합의에 이르도록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시대정신 이해와 슬기로운 지혜,그리고 역동성에 기대한다. 그것이 이성의 시대를 열어가는 시대정신이고 우리의 바람이다. /전 한국은행 총재 chchon2003@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