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못된 개혁'이 투자붕괴 초래..張夏準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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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夏準 <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서,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릴 것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의 경제난에 대한 정부의 중요한 변명이 여당이 소수당이어서 경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기에, 개혁이 더욱 더 강력히 추진되면 우리경제가 회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의 개혁 프로그램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우리 기업들이 기형적으로 많은 빚을 지어왔다는 인식하에 IMF 프로그램을 통해 부채비율을 강제로 낮추게 하였다.
그 이후에도 지주회사 설립,사업 다각화,은행대출 등과 관련하여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에 불이익을 주었다.
이에 더하여 재벌들의 소위 '문어발 경영'이 비효율적이라며 비관련 다각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개혁론자들은 과거 우리 자본 시장이 효율적이지 못하여 우량기업에 자금이 제대로 배분되지 못하고 불량기업이 제 때 퇴출되지 못했다는 믿음 위에 주식시장을 개방하고 기업의 인수·합병을 자유화하였다.
금융기관들의 효율성을 높인다며 이들이 보다 안전성과 이윤을 중시하도록 금융규제를 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결과는 투자의 붕괴였다.
우리경제의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1990∼1997년에 평균 37.1%였으나 1998∼2002년에는 과거의 4분의 3 수준인 25.9%로 떨어졌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
우선 기업의 부채에 대해 생각해 보자.빚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이다.
기업자금 조달에 있어 부채와 주식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은 학술적 논란이 분분한 문제이다.
실증적으로도 부채비율은 별 의미가 없다.
80년대의 스웨덴 등 북구제국(5백% 이상),70년대의 일본(역시 5백% 이상) 등은 우리나라(3백50∼4백%)보다 부채비율이 훨씬 높았음에도 경제가 잘 되었고 브라질(56%) 멕시코(82%) 등은 그 반대였음에도 경제가 잘 안되었다.
기업의 비관련 다각화 문제도 재고해야 한다.
비관련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하여 적극적 투자를 쉽게 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신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관련 다각화만 추구하였다면 삼성은 아직도 설탕과 양복지를 만들고 현대는 아직도 길을 닦고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적인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핀란드의 노키아도 벌목 고무장화 등 기존사업에서 돈을 끌어다 전자사업 부문을 세워 흑자를 보는 데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자본시장 정책에도 큰 문제가 있다.
명심할 점은 우리 주식시장 규모가 미국의 1백분의 1,영국이나 일본 등의 10분의 1 가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미국 주식시장의 자금 중 1∼2%만 이동하면 우리의 모든 상장기업을 살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인 소유지분이 급증하고 이에 따라 고배당에 대한 압력이 증가한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더해 인수·합병이 자유화되면서 기업의 경영권이 불안해졌다.
기업의 투자의욕과 능력은 모두 약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또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가 증가하고 금융규제가 안전성 위주가 되면서 금융회사들이 기업 금융을 회피하게 되었다.
은행대출 중 기업대출의 비율은 1991년 88.5%,1995년 77%에서 2002년에는 45.3%로 떨어졌다.
기업의 투자자금 동원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바로 투자부진이라는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더욱 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우리 경제의 개혁 방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 보아야 하지 않을까?
hjc1001@econ.cam.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