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이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곧잘 사용되는 게 표어다. 일종의 상징어인 셈이어서 호소력과 간결함이 특징이다. 슬로건이라고도 하는 표어는 논리보다는 정서를 중시하기 때문에 선동이 될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내용이 담길 때는 사회적인 통합을 이끌어 내 국가발전에 기여하곤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 아데나워 총리가 내건 슬로건은 '실험은 없다'였다. 시행착오가 있을 수 없다는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배어 있다. 1960년 취임한 일본의 이케다 총리는 '정치의 시대에서 경제의 시대로'라는 표어아래 일본식 경제모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미·일안보조약에 따른 정치적인 혼란도 이 표어 앞에서는 무력할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잘 살아보자''재건합시다'라는 슬로건이 국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었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표어가 더욱 위력을 떨치지 않았나 싶다. 자유당 시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민주당의 표어는 국민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고,참여정부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표어는 갈수록 여러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환경 안전 과학 소비생활 금연 소방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최근 한 기독교 단체에서는 사회불신풍조를 없애기 위해 '정직하겠습니다'라는 표어를 채택했다. 기념일이 돌아올 때나 국제적인 큰 행사가 열릴 때도 어김없이 공모해서 뽑은 표어가 내걸린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출산장려 표어를 모집한다는 소식이다. 출산억제를 위해 지난 61년에 창립된 이 협회는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자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잘 키운 딸 하나,열 아들 안부럽다'던 표어가 어떻게 바뀔지 두고 볼 일이다. 슬로건(slogan)이란 말은 스코틀랜드에서 위급할 때 집합신호로 외치는 소리(sluagh-ghairm)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출산장려가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을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