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단둥.신의주 인근 용천군 용천역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현지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전세계 언론들이 몰려들며 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동쪽 끝 변경도시인 단둥은 인구 2백40만명으로 신의주(32만명)보다 큰 도시이긴 하지만 두 도시 모두 1940년대 중반 시로 승격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철교인 중조(中朝) 우의교 옆에는 한국전쟁 때 폭파돼 끊어진 다리도 놓여있다. 용천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25일 이 곳에 올라 바라 본 신의주와 단둥의 외양은 너무 대조돼 보였다. 우선 신의주 쪽으로는 압록강각이라는 2층짜리 건물 정도가 덜렁 서 있을 뿐 고층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교 왼쪽으로 기다란 굴뚝이 보일 뿐이다. 주말이어서인지 공원으로 보이는 곳에 시민들이 나와 함께 태권도를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강변의 공장들은 낡아보는데다 비어있는 듯 썰렁해 보인다. 선전용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강변의 선박 위에서 군인들이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붉은 색 선전문구도 눈에 띈다. 하지만 단둥으로 눈을 돌리면 고층건물이 쑥쑥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강변 도로는 인근의 도로 확충공사와 넘치는 차량 탓에 체증이 심각해 보인다. 중조우의교 앞에 있는 중롄호텔 입구에서는 관악대와 비둘기까지 동원한 요란스런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다. 축포소리가 고막을 찢는 듯하다. 밤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신의주 쪽은 불빛이 간혹 보일 뿐이다. 단지 우의교 오른쪽으로 멀리 평소 야간에는 보기 힘든 불빛들이 보여 밤샘 구조작업을 감지케 한다. 하지만 단둥은 밤에도 밝은 거리가 인상적이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단둥의 밤 역시 신의주와 다르지 않았지요"(무역업체 우모 사장).단둥은 그러나 변했다. '폐쇄'와 '개방'이 만들어 낸 극심한 차이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상하이나 베이징까지 가지 않고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이 유일한 길임을 확인한 하루였다. 단둥=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