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 1억~3억원 정도인 기업에서 부실이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다. 개별 은행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우리가 만기를 연장해 주더라도 다른 은행이 회수하면 우리만 손해본다.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만기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 국민은행의 한 RM센터장은 중소기업 부실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거시경제 운용의 밑그림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게 현장의 소리인 것이다. ◆ 올해 안에 1백60조원 갚아야 은행들이 지난해 말 현재 중소기업에 빌려준 돈은 총 2백36조4천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1백59조8천억원(67%)은 연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이다. 문제는 경기 회복 지연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대출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 특히 중소기업 연체 증가에 '위기감'을 느낀 은행들이 일시에 대출 회수에 나설 경우 중소기업들의 '도미노식 자금 경색'이 우려된다. 은행들은 이미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신규 대출을 자제하는 등 '중소기업발(發) 금융대란'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 대출의 월평균 증가액은 2002년 3조4천억원에 달했으나 올들어서는 2조3천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에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 연장을 요청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 10개중 3개 '자금난' 기업은행은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2천64개 중소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3월중 중소제조업 동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달보다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응답한 업체 비율은 31.1%에 달했다. '자금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한 중소기업 비율은 지난 1월 35%, 2월 32.8%를 기록하는 등 3개월 연속 30%를 웃돌았다. 중소기업 가운데 특히 자금난이 심한 업체는 '영세 소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계, 섬유제품, 봉제의복, 가죽, 가방, 신발 등을 생산하는 영세 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게 기업은행측의 설명이다. 중소기업들은 자금 외에도 '원자재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자재 사정이 곤란하다'는 업체 비율은 1월(28.9%), 2월(37.5%)에 이어 3월에도 31.5%에 달했다. ◆ 중소기업 구조조정 불가피 은행들은 올들어 중소기업 연체율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라 고정이하 여신비율을 3% 아래로 맞춰야 하는데 중소기업 부실이라는 '복병'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1억∼3억원짜리 대출(영세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가운데 부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19개 은행의 3월 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2.8%를 기록, 작년 말보다 0.7%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중소기업 연체 증가→은행 부실화→신규 대출 축소→중소기업 자금난 가중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은행을 동시에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대출금 만기 연장이 아니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살아남은 업체에 대해선 업종 전환, 인수ㆍ합병 등을 유도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큰 그림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