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휴일 오전. 소설가 구보씨가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내의 표정이 환하다. 딸아이와 아들녀석도 좋아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게 짠하다. 아내 몰래 보증을 서줬던 친구의 부도로 가슴 졸이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느낌이 새롭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단란한 가족의 책방 나들이. 식구들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그는 "모두들 마음에 드는 책 한 두 권씩 골라 입구에서 만나자"고 사인을 준다. 구보씨의 눈에 먼저 들어온 책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와 나란히 놓인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김상복 지음, 장차현실 그림, 21세기북스)였다. 가정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칭찬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읽어서 알고 있지만, '엄마…'는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번역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칭찬하고 그 반응과 느낌을 기록한 네줄짜리 칭찬일기. '우리집 행복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결심하는 녀석도 있다. 구보씨는 '요건 내게도 필요하지만 아들놈한테 반드시 읽혀야겠다"고 다짐한다. 흐뭇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그는 곧 '행복한 작은 부자의 8가지 스텝'(혼다 켄 지음, 박정일 옮김, 청림출판) 앞에 멈춰섰다. "그래, 이거야!" 돈이란게 뭔가. '행복한 작은 부자'라는 제목이 눈길을 확 끈다. 이 책은 큰 돈을 모으려고 아둥바둥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작은 부자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진짜 부자라고 일러준다. 저만치서 딸아이가 책장을 팔랑거리고 있다. "뭘 고르고 있니?" "동식물들의 교훈이에요." '자연에서 배우는 행복의 기술'(린다 & 리처드 에어 지음, 문채원 옮김, 흐름출판)은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거위(성실), 사랑과 규율로 새끼를 키우는 코끼리(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 뿌리를 한데 얽어 폭풍우를 견디는 삼나무(협동) 등 9가지 덕목을 가르쳐 주는 책. '행복-돌고래에게 배우는 21가지 삶의 지혜'(오하라다 야스히사 지음, 구혜영 옮김,해토)에도 자신을 달달 볶지 말고 물흐르듯 즐기면서 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며 딸은 활짝 웃는다.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아들 녀석이 제 엄마 손을 끌고 달려오더니 "좋은 습관 들이는 조건으로 엄마한테 게임 허락 받았어요!"라고 외친다. 녀석의 손에는 '행복한 습관'(김학중 지음, 한언)과 '행복을 만드는 55가지 습관'(댄 로비 지음, 강현주 옮김, 영진닷컴)이 들려 있었다. 늘 덤벙거리는 습관을 고치려고 아내가 '좀 버거운' 책을 골라준 모양이다. 아내는 감자탕 교회로 유명한 저자의 '파이프 행복론'(조현삼 지음, 김영사)과 일본책 '900번의 고맙습니다'(아야노 마사루 지음, 최형식 옮김, 마당넓은집)를 펼쳐보인다. 일요예배 때 추천도서로 권할 만한 책을 찾고 있던 터라 꽤 만족한 눈치다. '900번…'은 난치병에 걸린 학생과 담임선생님 사이에 오간 3년간의 교환일기. 눈물샘이 약한 아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여덟권 합쳐 7만3천5백원. 네 식구 외식비보다 싼 '마음의 양식'들을 들고 구보씨 가족은 집 근처 공원으로 햇빛 사냥을 나간다. 푸짐한 책과 도시락의 향연. 부드러운 봄 햇살 아래 펼쳐지는 '풀밭위의 식사'가 한껏 싱그럽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