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hoi@hyosung.com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는 라일락 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해마다 5월이면 피어나곤 했는데 금년에는 날씨가 더워서인지 벌써 짙은 라일락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라일락은 다른 어떤 꽃보다도,여인의 향수보다도 향기롭다. 출·퇴근 때마다 라일락 향기 덕분에 자연의 혜택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때로는 나를 대학생 시절의 추억으로 데려다 주곤 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 한편에는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5월이면 싱그러운 녹음이 캠퍼스를 장식하고,라일락 향기는 녹색을 배경으로 캠퍼스에 또 다른 정취를 더해주었다. 80년대 초 대학가는 정치적 상황으로 암울한 시기였지만 5월의 라일락꽃만큼은 희망과 꿈으로 가득한 대학시절을 만들어 주었고,또한 그 시절의 추억과 오늘을 연결하는 고리가 됐다. 나의 학창 시절은 꿈과 이상과 열정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인생의 이상과 보람이라는 철학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시도하고 노력했다. 종교적 구도자처럼 정진하는 자세로 학문적으로는 전공분야뿐만 아니라 수학 전산 물리 등 여러 분야를 시도했다. 학문 이외에도 대중음악과 사회활동 등 많은 분야에 도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무런 재정적 준비 없이 미국 유학을 떠났고,공학박사학위 취득후 경영컨설턴트 및 경영자로서의 변신을 도모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현실의 한계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동안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해서인지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고,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연히 이것을 해서 무엇 하나?" 내 스스로가 무언가를 이루기보다는 "자라나는 내 아이들이 앞으로 잘하겠지"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거나 도피하는 사람이 돼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육체적 노화보다는 서서히 마음 속의 열정이 식어가고 희망을 포기해가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물러나 있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싱그러운 녹음과 라일락 향기 아래서 학창시절 꿈과 이상이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하고,그 향기는 지금 내게 새롭게 주어지는 도전과 변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