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은 4·19혁명 시위대는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를 의사로 착각해 환자 치료를 부탁한다. 만삭의 아내를 리어카에 싣고 병원으로 가던 이발사는 부상자를 돌봐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인다. 픽션과 난픽션이 유머러스하게 어우러진 이 장면은 '효자동 이발사'(감독 임찬상)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에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한 소시민의 삶이 정치적 우화로 채색돼 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체제'를 간접화법으로 비판함으로써 울림의 진폭을 확장시킨다. 주인공 성한모는 대통령의 이발사다. 최고 권력자의 '용안'을 만질 수 있는 특혜받은(?) 소시민이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싹튼다. 권력자의 곁에 있는 소시민의 근심과 수모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경호실장의 감시 아래 격식과 예절을 갖춰 대통령을 이발해야 하고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 아들 앞에서 경호실장으로부터 따귀를 맞기도 한다. 소시민과 권력간의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3·15 부정선거와 4월 혁명(이상 60년), 5·16 군사쿠데타(61년),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68년)과 박정희 대통령 암살(79년) 등 굵직한 사건 속에서 그의 존재와 역할은 한없이 초라하다. 무지한 탓에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만 비정한 권력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만다. 아픈 역사는 유머로 전달된다. "임자도 이 일 참 오래 하는구만."(대통령이 이발사에게) "각하도 참 오래 하십니다."(이발사가 대통령에게) 그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각하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객석에선 박장대소가 터진다. 이야기의 또 한 축인 부자간의 관계는 감동적이다. 자식을 끔찍히 아끼는 위대한 아버지로 성한모는 복권된다. 성한모 역의 송강호는 서슬 퍼런 권력자들의 뒤켠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소시민 캐릭터를 무난하게 연기했다. 특유의 유쾌함은 잃지 않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화면을 장악했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5월5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