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뢰, 인사청탁 등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은 사회지도층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일반인에 비해 사회, 정치적인 책임을 한층 무겁게 느끼고 있고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업적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명예롭게 죽자'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잇따라 목숨을 끊고 있다고 진단했다. ◆ 비리연루 저명인사 잇단 자살 =29일 박태영 전남지사의 한강투신에 앞서 지난달 11일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차 3천만원을 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59)이 승용차를 운전하다 한남대교에 차를 세우고 한강에 몸을 던져 11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또 지역기업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안상영 부산시장(65)이 지난 2월 4일 오전 1시께 구치소 내 의료사동 상층 10호실에서 러닝셔츠를 찢어 만든 끈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 시장은 부인에게 남긴 유서에서 "사회적인 수모를 감내하기 어려워 오늘의 고통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자살 직전의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99년 광주의 김기삼 조선대 총장이 학교운영 비리와 관련,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고 지난해 8월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투신자살해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아 넣기도 했다. ◆ "추한 모습 보이느니 명예롭게 죽자" =사회 저명인사들의 잇따른 자살에 대해 최낙경 한림대학 성심병원 정신과 과장은 "유명인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실추될 경우 허망함과 억울한 심정이 겹쳐 충동적으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대선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영일 의원은 27일 결심공판에서 "구구한 변명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구치소에서 이 나이에 더 살아서 무엇하나 생각하고, 가깝게 지내던 안상영 시장의 용기가 부러울 만큼 하루에도 몇번씩 자결충동을 느꼈다"고 최후진술하기도 했다. 오수성 전남대학교 임상심리학과 교수는 "인생의 실패를 모르고 탄탄대로를 달려온 배경이 이들에게 오히려 좌절감이 몰려왔을 때 견뎌내는 힘을 키우는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준택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사회적 관계성에 대한 책임이 크고 자존심이 강해 추한 모습을 보이느니 목숨을 끊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유명인 가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저명인사인 가장이 위기에 몰릴수록 가족들이 용기를 주고 관심을 가져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언론이 저명인사의 비리 연루사실을 보도할 때 무죄추정 원칙에 의해 적극적인 해명기회를 주는 등 균형잡힌 보도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최성국ㆍ이관우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