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지난 2001년 중소기업들의 원활한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을 위해 마련한 '채권은행협의회 운영협약'(이하 채권은행협약)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여러 금융사로부터 5백억원 미만을 빌린 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금융사들의 채무재조정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중소기업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선 채권은행협약을 구속력 있는 협약으로 바꾼 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융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채권은행협약은 '공약(空約)'=은행들은 지난 2001년 9월 채권은행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은행들은 총 채무 5백억원 미만인 중소기업 가운데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상대로 '자율적인 워크아웃'을 실시토록 명시돼 있다. 워크아웃을 적용받는 중소기업은 채무감면,금리인하,만기연장,출자전환 등과 같은 채무재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채권은행협약에 따라 워크아웃을 적용 받은 중소기업은 단 한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채권은행협약 첫 해인 지난 2001년 3∼4개 업체를 상대로 워크아웃을 적용하려다 은행간 이견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며 "이후에는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워크아웃을 실시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조흥,하나,우리은행 등도 채권은행협약에 따라 워크아웃을 적용한 예는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 기업은행과 산업은행만이 지난 3년간 공동으로 1개 기업을 상대로 워크아웃을 적용했다. ◆대출 5백억원 미만 업체가 문제=금융감독위원회는 기업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01년 '기업구조조정촉진법'(구촉법)을 마련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신용 상시평가제도'를 통해 반기마다 약 1천개 기업의 신용상태를 평가한 후 '부실징후기업'으로 지정되면 구촉법을 적용받도록 돼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부실징후기업으로 지정된 업체 수는 80개이며 이 가운데 27개 업체가 구촉법 적용기업으로 지정됐다. 문제는 나머지 53개 업체다. 구촉법 적용기업은 총 채무액이 5백억원 이상인 중소기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 채무액 5백억원 미만인 나머지 53개 업체는 회생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아웃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 관계자는 "단일 은행으로부터 2백억원 미만을 대출 받은 중소기업은 각 은행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중소기업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적용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여러 금융사에서 2백억∼5백억원을 빌린 중소기업은 워크아웃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동관리가 필요하다=은행 관계자들은 "여러 은행에서 빚을 진 중소기업의 경우 한 은행이 나서서 채무 재조정과 자금지원을 해주더라도 다른 은행이 채권을 회수한다면 정상화 지원은 물거품"이라며 "은행들이 공조하는 워크아웃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채권은행협약을 강제력 있는 협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채권은행협약의 경우 구촉법과 달리 △채권단 간의 의결사항 불일치 △채권단내 이견조정방안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신용위험관리 △반대채권자 처리방안 등에 대해서 어떠한 강제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7월 채권단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워크아웃 공조 방안을 한때 논의했으나 은행간 이견으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